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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신의 런던여행기 초상화 미술관
04/23/18  |  조회:183  

초상화 미술관(National Portrait Gallery)

 

내셔널갤러리 옆으로 코너를 돌아가면 초상화 미술관 입구가 나온다. 마치 큰 건물의 옆 문을 통해 부속 건물로 들어가는 느낌이 난다. 하지만 조그맣다고 얕보면 큰일 나는 갤러리이다.  역대 영국 왕실과 귀족들, 그리고 역사적으로 유명한 모든 영국인들의 초상화와 흉상이 다 모여 있어 그야말로 영국의 얼굴이 되는 미술관이다. 1856년에 개관했는데 당시 세계 최초의 초상화 미술관이었다고 한다.

 

친밀한 느낌의 아담한 규모이지만 어쩐지 엄숙하고 장중한 분위기의 건물이었다. 이층으로 올라가 튜더전시관(Tudor Room)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중세 시대의 실내처럼 어둑하고 고풍스럽게 꾸며 놓은 전시관 제 1 벽에는 역대 튜더왕들의 초상화가 빼곡하게 걸려 있었다. 역대 왕들의 어진인 셈이다. 이 왕들의 시대로부터 영국이라는 국가의 정체성이 시작된다는 의미인 것 같았다.

 

계속 앞으로 나아가면 엘리자베스 1세 여왕과 여왕을 모신 신하들의 전신 초상화들이 나온다. 여왕에게 충성을 맹세한 귀족들의 초상화는 대부분 젊고 핸섬한 남성들의 초상이었는데, 재미있는 것은 그 멋있는 신하들의 대부분이 여왕과 연애 관계가 있었다고 기록해 놓은 점이다.  그 중에서 단연 돋보인 초상화는 헨리 뤼오테슬리, 사우스햄프턴 3세 백작(Henry Wriothesley, 3rd Earl of Southhampton). 긴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다녔다고 전해지는 역사 기록처럼 물결치는 짙은 흑발을 가슴까지 늘어뜨린 매혹적인 미남이었다. 은빛과 금빛으로 장식된 정장을 하고 허리에 손을 짚은 도도한 포즈의 사우스햄프턴 백작은 현대에 나타나 패션 모델을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미모와 스타일을 과시하고 있었다.

 

우리는 튜더전시관을 지나 스튜어트 왕조 전시관, 조오지 시대, 에드워드 시대, 빅토리아 시대 전시관, 17세기 전시관, 18세기 전시관 등을 계속 보며 지나갔다. 개혁 시대, 식민지 개척, 무역과 경제 확산, 과학과 예술, 등 주제에 따라 인물들의 초상화나 흉상들이 끝없이 나온다. 나중에는 의회의 집단 초상화까지 나왔다! (식민지 개척시대 전시관에는 죠지 워싱턴의 초상화도 있었다.) 20세기 전시관에는 귀족들의 초상화가 끝없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역사적으로 영국을 지배해 왔던 지배계급(Ruling Class)의 권력이 느껴지는, 어떤 면에서는 위압적인 느낌의 전시였다.

 

현대로 들어서면서 초상화의 느낌도 많이 달라졌다. 실험적인 기법의 그림들과 사진이 등장했고, 왕실이나 귀족들의 초상화도 권위를 부각시키는 옛날 이미지가 아니라 보다  친근하고 서민적인 모습으로 등장했다. 최근에 초상화가 전시된 현 영국 세자빈 케이트 미들턴은 초상화 미술관의 공식 후원자이기도 하다. 초상화 미술관에서는 또한 매년 초상화 대회를 개최해 BP 초상화 상을 수여하고 (BP Portrait Prize) 입상 작품들을 전시하기도 한다. 

 

초상화 미술관에는 195,000 점의 초상이 전시되어 있는데 역사적으로 그 초상을 제작한 예술가의 명성 보다는 어떤 인물의 초상 인가에 중점을 두고 전시물을 선정해 왔다고 한다.  규모는 작지만 전시 내용면에서는 영국의 역사와 문화, 아니 모든 것을 아우르고 있는 이 초상화 미술관은 매년 2천여만 명의 방문객들을 맞이하고 있다고 한다.

 

영국 사람들은 어떻게 이런 미술관을 만들 생각을 했을까! 과거를 이룩했고, 현재를 진행시키고 있으며, 미래를 창조할 영국인들의 얼굴이 시간의 물결처럼 흐르는 것을 몰입 속에 보고 나서, 나는 이 독특한 미술관이 영국 미술관 관람의 압권이라고 생각했다.

 

R과 나는 감탄의 한숨을 쉬며 초상화 미술관을 나왔다. 저녁에 위키드 뮤지컬 관람을 하기 전에 세븐다이얼스에 가서 저녁 식사를 하기로 했다. 런던의 오후는 서서히 저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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