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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신의 코펜하겐 여행기_15. 프레데릭스 교회 (Frederiks Kirke), 또는 마블 교회
08/12/19  

에멜린보르 궁전 광장을 나온 우리는 바로 길 건너에 보이는 프레데릭스 교회로 향했다. 프레데릭스 교회를 여기서는 마블 교회로 부른다고 한다. 왜 본명 대신에 마블 교회, 즉 ‘대리석 교회’라 부르는지는 알 수 없다. 덴마크를 대표하는 복음주의 루터파 교회로 에멜린보르 궁전과 광장을 내려다보듯 감싸 안아 덴마크 로코코 스타일 건물들로 유명한 프레데릭스타드 지역을 형성하고 있다. 지금은 2004년에 건축된 코펜하겐 오페라 하우스까지 연결되어 과거와 현재가 바다를 사이에 두고 일직선으로 이어진 장관을 이루고 있다.

 

길을 건너기 전에 올려다 본 교회는 화려한 로코코 스타일이라고 하기엔 상당히 근엄하고 장중한 느낌을 주었다. 시선을 압도하는 교회의 청동 돔은 직경이 31미터로 스칸디나비아 반도에서 가장 큰 교회 돔이라고 하며, 이 교회의 설계를 맡았던 건축가 니콜라이 아익트가 로마의 성 베드로 성당에서 영감을 받아 모델로 삼았다고 한다. 코펜하겐에서 가장 큰 교회로 지금도 종교적 영향력이 살아 있고 이 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리는 것이 젊은이들의 로망일 정도로 일반 주민들의 삶과도 밀착되어 있다고 한다.

 

R과 나는 교회로 들어가기 전에 교회 주변을 살펴 보기 시작했다. 마블 교회를 둘러 싸고 덴마크 교회사에 업적을 남긴 종교계 위인 14명의 동상이 있는데 그 중에 철학자 쇠렌 키에르케고르의 동상도 있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옛날에 집을 떠나 멀리 대학교에 갓 들어갔을 무렵 실존주의 철학의 선구자 키에르케고르의 저서 ‘죽음에 이르는 병’, ‘공포와 전율’ 등을 읽고 조숙한 ‘여고생 철학자’ 였던 여동생과 함께 심각한 편지를 주고받던 시절이 있었다. 밤 새워 책을 읽고 열심히 편지를 쓰던 그 시절에 키에르케고르는 우리 어린 영혼들을 뒤흔들어 놓은 ‘위대한’ 철학자였다. 나는 R에게 머나 먼 전생처럼 느껴지는 내 십대 시절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키에르케고르의 동상을 찾아 보았다.

 

키에르케고르의 동상은 교회 왼쪽 벽을 따라 중간쯤에 있었다. R이 먼저 발견했다. 나는 마치 키에르케고르를 실제로 만난 것처럼 감격해서 달려갔다. 동상은 너무나 낡아 보였다. 청동의 표면이 다 벗겨져 마치 산성비를 주룩주룩 맞고 녹아 내리는 듯한 몰골이었다. 키에르케고르의 초상화는 긴 얼굴에 커다란 눈이 선해 보이는 감수성 깊은 젊은 청년의 모습이었는데 이 동상은 왜소하고 늙어 보이는 중년 남자였다. 평생 코펜하겐 거리를 걷고 또 걸었다는 키에르케고르는 외출복에 지팡이를 짚고 발자국을 떼는 자세였으나 금방 앞으로 고꾸라질 듯 애처로워 보였다. 왜 그의 동상을 이렇게 만들었을까? 위선과 매너리즘에 빠진 덴마크 국교회를 신랄하게 비판했던 그에 대한 교회의 마지막 복수였을까? 마음 깊은 곳에 키에르케고르에 대한 순수한 애정을 간직했던 나는 슬퍼졌다. 그의 동상 앞에 우두커니 서 있는 나를 보고 R은 내가 무슨 철학적인 상념에 깊이 빠졌다고 생각했는지 멀찌감치 떨어져 가만히 보고만 있었다.

 

  동상을 보고 나서 우리는 검은 문이 달린 교회 정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 갔다. 정문 앞에는 덴마크 어와 영어로 된 안내판이 두 개 나란히 서 있었는데 거기에도 교회 이름을 ‘마블 교회’라고 써 놓았다.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오후 1시에 청동 돔 꼭대기에 올라가 볼 수 있다고 한다. 금요일이라 우리는 해당이 되지 않았다. 생각보다 크지 않고 침착한 분위기의 어두운 본당에는 아무도 없었다. 우리는 텅 빈 본당 맨 뒷자리에 앉아 잠시 기도를 올렸다. 추워서 볼이 빨개진 R은 가만히 눈을 감고 있었다. 나는 딸과 함께 떠나 온 코펜하겐 여행을 감사드렸고, 긴 역사와 모던한 현재가 우아하게 공존하며 아름다운 질서를 이루고 있는 코펜하겐에 평화와 축복이 가득하기를 기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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