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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신의 코펜하겐 여행기_19. 휘게 (Hygge)
09/09/19  

인어공주 동상을 뒤로하고 우리는 다시 랑에리니에 산책로를 따라 터덜터덜 내려갔다. 내려오는 길에 점점 어두워져서 사방이 적막하고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매섭기만 했다. 겨우 3시가 조금 넘었는데 이렇게 어둡다니, 북구의 겨울이 실감났다. 한참 내려와 랑에리니에 공원이 시작하는 어귀 교차로에 조그만 빵집이 하나 보였다. 겨울 바람이 윙윙 부는데 멀리 따뜻한 불을 환하게 켜놓은 그곳을 보니 너무 반가워서 우리는 마치 캄캄한 숲속에서 등불을 발견한 어린아이들처럼 허둥지둥 달려갔다.

 

베이커리 카페. 간단한 빵 종류와 커피, 그리고 차를 파는 곳이었다. 밖은 어둡고 추운데 안으로 들어서니 밝고 훈훈하고 딴 세상 같아 눈물이 나올 지경이었다. 덴마크의 겨울은 너무나 길고 추워서 이렇게 실내에 난방을 충분히 하고 아늑하게 꾸미지 않으면 도저히 견딜 수가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휘게’라는 개념이 발달한 것이 아닌가 하고 비로소 이해가 되었다.

 

덴마크에서 유래한 ‘휘게 (Hygge. 덴마크어로 들어보면 ‘후가’와 ‘히거’의 중간쯤 되는 도저히 따라할 수 없는 발음이다)’라는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 조금 알아 보았는데 결론은 그냥 ‘따뜻하고 아늑하고 편안하고 정답게 살자’라는 의미인 것 같았다. 미국 사람들에게 ‘자유’라는 개념이 국가적인 DNA라면 덴마크 사람들에게는 ‘휘게’가 그런 상징적인 개념이라고 한다. 잠깐 살펴 본 ‘휘게’의 내용은 첫째, 조명을 환히 밝힐 것, 둘째, 따뜻하게 지낼 것, 셋째, 어떤 식으로든 편안하고 아늑하게 주거지를 꾸밀 것 등이 골자이다 (그 외에도 옷차림, 식생활, 등 여러 가지 조건이 많다). 그 목적은 오로지 ‘사랑하는 사람들과 편안하고 정답게 함께 사는 삶’이다.

 

피상적으로 다가오던 ‘휘게’는 코펜하겐에 와서 실제로 겨울 날씨를 겪어보니 매우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삶의 태도인 것으로 피부에 와 닿았다. 혹독한 자연과 투쟁하며 동화같은 복지국가를 이룩한 이곳 덴마크 사람들의 생존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삶의 방식이었을 것이다. 당장 관광객에 불과한 R과 나도 이 추운 오후를 지나 밤까지 견디기 위해 ‘휘게’가 절실히 필요했으니까.

 

우리는 환하게 밝혀 놓고 따뜻하게 난방을 해서 손님들이 모두 외투를 벗고 반소매를 입고 앉아 있는 카페에 앉아 뜨거운 국화차를 마시면서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를 의논했다. 밖은 마치 한밤중 같았는데 실제로는 오후 4시에 불과했다. 아침에는 9시가 되어야 겨우 해가 뜨니까 하루에 온전히 밝은 시간은 오후 3시경까지6시간 정도에 불과했다. 여름에는 아침 4시경에 해가 떠서 밤 10시까지 환하니까 활동할 수 있는 시간이 17시간이 넘는다고 하는데 겨울은 6시간 만에 해가 져 버리니 관광에는 정말 적합한 계절이 아니다. 하지만 겨울 코펜하겐에 나타난 우리는 추위에 덜덜 떨면서도 전혀 기가 죽지 않았다.

 

아까 지나쳤던 디자인 박물관을 보러 가면 참 좋겠지만 6시에 문을 닫으므로 시간이 너무 촉박했다. 우리는 6시에 저녁 식사 예약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음날로 미루고 저녁 때까지 쇼핑 구역 Stroget (영어식 발음으로 하면 ‘스퇴레겟’ 정도겠지만 역시 덴마크 발음으로 들어 보면 ‘스트뢴’ 으로 들린다)에 열리는 크리스마스 마켓에 가 보기로 했다. Stroget은 유럽에서 가장 긴 쇼핑 구역이라고 한다. 덴마크 쇼핑 거리도 살펴 보고 유명한 덴마크 크리스마스 마켓도 구경하고 저녁 식사까지 시간을 보내기에 완벽한 계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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