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홈으로 여행
김효신의 런던여행기 세인트 폴 대성당 2
05/07/18  |  조회:102  

오디오 가이드를 들으며 왼쪽에 나오는 웰링턴 공작의 동상과 묘를 지나 우리는 대성당 안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안쪽으로는 중간에 돔이 있고 멀리 동쪽으로 제단이 보였다. 계속 걸어 가려는데12시 30분부터 성찬식을 한다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일반 성도뿐만 아니라 관광객들도 환영한다고 해서 R과 나도 참석하기로 했다. 신자는 아니지만 영국에서 제일 큰 대성당에서 거행되는 성찬식을 보고 싶었다.

 

성찬식이라고 해서 엄숙한 의식을 기대했는데 의외로 전체 의식은 간결하고 담백했다.

성도들과 관광객들이 섞여 앉아 조용히 말씀을 듣고 찬송을 부르고 성찬식을 거행했다. 우리는 신자가 아니므로 앞으로 나가서 성찬을 받지는 않고 구경만 했는데 경건하고 평화로운 분위기에 마음이 편안해졌다. 다 끝난 후 서로 인사를 하는 순서가 되자 낯선 영국인들과 관광객들이 다가 와 악수를 청하고 포옹을 했다. 성찬식 자체보다 그 순간이 더 마음에 남았던 까닭은 인종과 국적을 초월해 신 앞에 인간은 한 형제라는 것을 깊이 깨달았기 때문일 것이다.

 

성찬식이 끝난 후, 우리는 정결하고 편안한 마음이 되어 즐겁게 대성당 안을 다시 둘러 보기 시작했다. 세인트 폴 대성당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돔이기 때문에 오디오 가이드도 돔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설명했다.  로마에 있는 판테온을 본 따 만든 둥근 창이 한 가운데 있고 그 주위로 벽화가 그려져 있는데 65미터 높이에서 그런 정교한 벽화를 그렸다는 것이 놀라웠다. 그 벽화를 그리기 위해 당시 화가를 선택해야 했었는데 첫째로 영국인이어야 하고, 둘째로는 세인트 폴 대성당이 성공회 성당이기 때문에 개신교도여야 한다는 엄격한 기준이 적용되었다고 한다. 심사 끝에 제임스 손힐 경(Sir James Thorhill)이 뽑혔다. 제임스 손힐 경은 이탈리아 바로크 화풍의 화가로서 세인트 폴 대성당을 당당한 이탈리아식 대성당처럼 꾸미고 보존을 위해서 벽화를 모자이크 타일로 하자고 주장했지만, 당시 종교, 정치 및 사회상을 고려하고 또 천주교 성당처럼 보이는 것을 피하기 위해 색채를 배제하고 흑백으로 벽화를 그리게 되었다. 돔 내부를 빙 둘러 세인트 폴, 즉 성 바울의 생애를 묘사했는데 2년에 걸친 대 작업이었다고 한다. 엄숙하고 담백하게 그려진 돔 벽화는 그 후 영국 산업화에 따라 공기 오염으로 부식, 파괴되어 근래에 다시 복원했다고 한다.

 

어마어마한 돔 벽화를 올려다 보느라고 우리는 목이 아파서 뒷목을 잡고 안으로 더 들어갔다. 먼저 보이는 제단은 왕족들이 예배를 드리는 제단이고, 그 안 쪽으로 더 들어가면 원래 오리지널 제단이 있는데 바로 그 제단 앞에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2만 8천 명 미군들의 희생을 기리는 미군 기념비 제단이 있었다. 대부분 영국기지에서 유럽 각지로 출정 나갔다가 전사한 미군들이라고 한다. 제단 앞에는 금박을 입힌 유리관이 하나 있었고 그 안에 커다란 책이 펼쳐져 있었는데 성경인 줄 알았더니 전사한 병사들의 이름이 새겨진 책이라고 한다. 유리관 뒤 제단에는 각종 식물과 동물이 조각되어 있어서 설명을 들으며 자세히 보았다. 듣고 보니 그 조각들은 병사들의 고향 각지 특유의 식물과 동물들을 묘사한 것이었다. 이국에서 세계의 평화를 위해 목숨을 바친 영혼들이 고향의 숨결을 느낄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라는 설명이었다.

 

정말 영국인들이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을 진정으로 기리고 기념하고 존경하고 애도하는 그 모습은 놀랍기만 했다. 그런 국민성과 정서 속에서는 나라를 위해 싸우고 죽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전통이 생겨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실제로 수많은 전쟁이 일어날 때마다 영국인들은 귀족의 자제들부터 솔선수범하여 온 나라의 젊은이들이 전쟁터로 달려 나갔다. 귀한 젊음과 목숨이 사라져 갔지만 조국은 그들을 결코 잊지 않는다.

 

  멀리 타국의 전쟁터에 와서 스러진 동맹국의 젊은이들까지 기리는 영국인들이 참으로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며 우리는 제단을 떠났다.

세인트폴 대성당 돔
아메리칸 채플 기념제단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