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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 I (Moscow I c. 1916)
10/28/19  

바실리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  1866 – 1944)

(캔버스에 유채 49.5 cm x 51.5 cm 모스크바 트레차코프 갤러리)

  

추상 미술의 아버지로 알려진 러시아 태생 화가 바실리 칸딘스키는1895년 모스크바에서 열린 한 전시회에서 프랑스 화가 클로드 모네의 인상파 그림을 보고 화가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모네의 ‘짚단’ 그림을 보고 감명 받았던 이유에 대해 칸딘스키는 ‘그림의 소재는 시각적으로 알아 볼 수 없었으나 형상의 묘사를 뛰어 넘는 빛과 색채의 표현이 거의 동화같은 힘과 장관으로 기억에 뚜렷이 각인’되었기 때문이라고 기록에 남겼다.

 

삼십 살이 넘어 미술 공부를 시작한 칸딘스키는 부유한 차 수입 무역상 집안에서 태어나 경제적으로 넉넉하고 자유로웠던 배경에 힘입어 유럽을 여행하며 당대의 유명한 화가들과 교류할 수 있었고, 특히 오래 머물렀던 독일에서는 뜻이 맞는 화가들과 청기사 파를 결성하기도 했다.

 

1914년에 독일이 러시아에 전쟁을 선포하자 칸딘스키는 러시아로 돌아와야 했다. 러시아 혁명 후에 새로운 국가, 노동자들을 위한 이상향이 건설 되리라 믿고 미래에 대한 희망에 젖어 있던 고국의 모습을 목격한 칸딘스키는 그 역동적인 변화를 화폭에 담고 싶어 했다. ‘상상력에서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며 음악적으로 풍요롭고, 복잡하며, 하지만 동시에 단순한’ 그림을 그리고자 했다.

 

희망을 나타내는 듯한 푸른 색이 지배하는 이 화면 속에는 칸딘스키가 꿈꾼 새로운 모스크바의 미래가 펼쳐져 있다. 그는 ‘기쁨과 삶과 우주의 행복이 색채와 형태의 조화 속에 표현되는 그림’을 꿈꿨다. 풍성한 색채의 향연이 벌어진 화폭에는 수많은 건물들과 사람들, 그리고 자연과 문명의 조화가 마치 거대한 오케스트라의 음향처럼 터져 나오고 있다.

 

칸딘스키는 그 후 말레비치나 로드첸코처럼 냉정하고 기하학적인 그림을 그리는 미래파 화가들과 어울리지 못해 결국 고국을 떠났고, 미술의 정신적인 가치와 색채에 대한 탐구에 평생을 바치며 20세기 미술에서 가장 중요한 예술 이론가 중의 한 명이 되었다. 서정적인 이미지로 모스크바의 미래를 꿈꾸었던 그의 비전과 달리 그 후 그의 고국은 ‘철의 장막’이 되어 버렸고, 칸딘스키는 영영 고국에 돌아가지 못하고 유럽을 떠 돌았다. 칸딘스키가 사랑하는 조국에 바친 헌사같은 이 그림만이 아직도 모스크바에 남아 있다. 

 

김 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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