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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신의 코펜하겐 여행기_27. ‘팅’
11/04/19  

우리는 아까 나왔던 문을 통해 따뜻한 시청 건물 안으로 다시 들어갔다. 크리스토퍼 할아버지는 우리를 인솔해 기다란 복도를 지난 뒤 아름다운 벽화가 그려져 있는 벽 아래 대리석 층계로 데려갔다. “여러분, 여기는 ‘경건의 계단’입니다. 시청 이층에 있는 시의회 본당으로 가려면 건물 양쪽에 있는 두 개의 계단 중 하나를 통해 올라갑니다. 하나는 여러분이 보고 계시는 이 ‘경건의 계단’이고, 또 하나는 건물 반대쪽에 있는 ‘기쁨의 계단’입니다. 시청에 행사가 있어 여왕께서 방문하실 때가 있는데, 여왕께서는 반드시 이 ‘경건의 계단’을 통해 올라 가셔야 합니다. 계단을 다 올라가면 거기서 기다리고 있는 코펜하겐 시장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한 다음, 방명록에 정중히 서명을 하셔야 됩니다. 그 후에야 비로소 행사에 참석하실 수 있습니다.”

 

대리석 ‘기쁨의 계단’은 세월의 무게를 말해 주는 듯 반들반들하고 매끄럽게 보였다. 주위의 벽화는 아마도 코펜하겐의 옛날 모습을 묘사한 것 같았다. 목가적인 전원 풍경이 한쪽에 펼쳐져 있고, 창문 건너 다른 한쪽에는 바다와 운하를 끼고 있는 옛날 코펜하겐 시의 정경이 그려져 있었다. 이 벽화 밑으로 덴마크 여왕이 ‘경건의 계단’을 한 계단 씩 엄숙한 표정으로 올라가는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평화롭고 아름다운 나라 덴마크 국민과 자유로운 도시 코펜하겐 시민에 대한 자신의 의무를 다시 한 번 되새기며 성실한 마음으로 올라갔을 것 같았다. ‘경건’한 표정으로 계단 밑에 서 있는 우리에게 크리스토퍼 할아버지는 ‘마음대로 올라 가셔도 된다’고 말하며 미소를 지었다. 우리는 계단 하나라도 섣불리 대할 수 없다는 마음으로 조심조심 이층으로 올라갔다.

 

이층에는 시의회 본당 회의실이 있었다. 19세기 건물답게 목조 천장에 우아한 샹들리에가 걸려 있는 아주 고풍스런 실내였다. 직사각형 홀 안에는 한쪽 벽 중앙에 의장석이 높이 자리잡고 그 앞에 미음자 형태로 빙 둘러 시의원들이 앉도록 역시 나무로 만든 테이블과 좌석이 배치되어 있었다. 각 좌석 앞에는 컴퓨터 모니터와 마이크가 하나씩 설치되어 있어서 19세기와 21세기가 공존하는 회의실 모습이었다. 그러나 제일 먼저 눈길이 간 것은 의장석 뒤에 제단처럼 설치된 자주색 벽걸이와 그 위에 금빛으로 수 놓아진 한 그루 나무였다. 나무의 양 옆에는 커다란 장검이 벽에 걸려 있었다.

 

“보이시죠? ‘사랑의 나무’입니다. 이곳 코펜하겐 시의회에서는 55명의 시의원들이 시장을 중심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각 지역을 대표하는 시의원들이 이곳 회의실에 모여 회의를 하죠. 21세기로 들어섰지만 우리는 아직도 그 옛날처럼 커다란 칼을 옆에 놓고 ‘사랑의 나무’ 밑에서 대화를 하고 있습니다.” 크리스토퍼 할아버지는 놀란 표정으로 서 있는 우리 앞에서 ‘사랑의 나무’를 가리키며 설명했다. “사랑의 나무 밑에는 우리가 평화와 화합을 지키는 한 꼼짝 못 하고 눌려 있는 용이 있습니다. 이 그림의 나무 밑에는 의장석이 있고 이 의장석 밑으로 땅 속에 용이 있지요. 의장석에서 일직선으로 회의실을 쭉 가로질러 가면 아까 밖에서 보셨던 용머리와 연결이 됩니다.” 과연 회의실을 가로질러 쭉 이어간 반대쪽 벽 바깥에 둥글게 튀어나온 건물벽이 자리잡고 있었다. 21세기를 살고 있는 현대 코펜하겐의 시청이 마치 동화 속에 나오는 옛날 마법의 성처럼 느껴졌다.

 

  “덴마크어에는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팅’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어떤 문제를 토의하거나 어떤 것에 대해 얘기한다는 뜻입니다. 벌써 토의가 되어서 결정이 되었거나 얘기가 다 끝났다면 우리는 ‘벌써 팅 된 얘기’라고 합니다. 덴마크 사람들은 대대로 이 나무 밑에서 ‘팅’을 했고 협상을 했습니다. 우리는 아직도 우리가 이 코펜하겐 시청 회의실 사랑의 나무 밑에서 ‘팅’을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내 눈에 이미 먼 옛날 바이킹 족장같이 보이는 크리스토퍼 할아버지는 우리에게 열심히 덴마크의 협상 문화를 설명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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