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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신의 코펜하겐 여행기_31. 코펜하겐 시청 탑: 덴마크 혁명 1849
12/02/19  

다시 시청 정문으로 들어가 관광객 안내사무실에 가서 시청 탑 견학 티켓을 샀다. 30 크로나. 아침에 그랬던 것처럼 나무벤치에 앉아 기다렸다. 러시아 커플과 우리까지 달랑 4명이었던 오전과는 달리 15명 정도가 대기하고 있었다. 모두 20-30대 건장한 젊은이들이다. 발그스레한 뺨에 눈이 반짝거리는 젊은이들을 보니 기분이 좋아졌다가 갑자기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300여 개 계단을 올라가야 하는데 삐걱거리는 무릎으로 이 젊은이들과 발을 맞추려면 큰일났구나…’ 하지만 걱정은 딱 3초 동안만 했다. 스트롬 유람선에서 만난 의족 아가씨를 생각하며 용기를 냈다. 열심히 따라가면 되지! 못할 것 없다!

 

12시 정각이 되자 크리스토퍼 할아버지가 나타났다. 잔뜩 모여 있는 사람들을 보고는 얼굴이 환해지며 신나는 표정을 지었다. “반갑습니다. 여러분의 시청 탑 견학을 안내할 크리스토퍼입니다.” 그는 또 나타난 나를 발견하고 눈을 찡긋하며 아는 체했다. 우리는 그를 따라서 시청 광장으로 들어가 옆으로 난 계단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피렌체에서 두오모와 조토의 종탑을 오를 때 좁고 가파른 계단으로 밀리 듯 올라가던 생각만 하고 잔뜩 긴장했었는데 여기서는 넓은 계단으로 올라가는 것이라 뒤에 따라오는 사람들을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우루루 몰려가며 긴 다리로 성큼성큼 올라가는 젊은이들을 따라 가느라 이번에는 뒤쳐지지 않게 서둘러야 했다.

 

정신없이 층계 몇 개를 올라갔는지 모른다. 맨 앞에 가는 크리스토퍼 할아버지는 노인이라 볼 수 없을 정도로 날쌔게 계단을 오르다가 어두컴컴한 층계 위에서 옆으로 난 긴 복도로 우리를 안내했다. 그곳은 소박한 전시관이었다. 복도 양옆으로 유리 전시관이 길게 늘어서 있고 시청의 역사를 보여주는 옛날 사진들과 유물들이 보관되어 있었다. 우리는 전시관 앞에 멈춘 크리스토퍼 할아버지를 중심으로 빙 둘러섰다.

 

“여기서 잠시 시청 탑의 역사에 대해 설명하고 올라가겠습니다. 보시는 바와 같이 이 분이 시청을 설계하고 건축한 마르틴 나이로프입니다.” 조명이 환히 비치는 유리관 안에는 마르틴 나이로프의 두상 조각, 사진, 자필 편지, 명함, 삼각자, 그리고 주머니에서 나온 듯한 동전까지 전시되어 있었다. 다른 유리관에는 시청의 역사를 보여주는 각종 사진과 유물들이 있었는데 당시 먹던 음식과 시청 탑에 날아드는 비둘기, 그리고 비둘기 모이와 비둘기 알까지 박제를 해 놓았다. 군데군데 벗겨지고 완전 골동품처럼 보이는 물건들이었지만 세월의 흔적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아 오히려 실감나고 정겨웠다.

 

“시청은 1905년에 세워졌습니다. 덴마크인들은1849년에 혁명으로 민주주의를 쟁취했는데 그 고귀한 덴마크 시민정신을 보여주기 위해 시청 탑을 높이 올렸습니다. 그 당시 가장 높은 건물이었던 왕궁보다 훨씬 높이 올라갔죠. 시민들은 탑 꼭대기에 올라가 이제는 타 버려서 없어진 왕궁 쪽을 아래로 내려다보며 800년 왕정을 과거에 묻었습니다. 시청 탑이 일반에게 공개된 초기에는 하루에도 수백 명의 시민들이 몰려와 탑으로 올라갔습니다.” 우리는 덴마크 역사의 중요한 한 부분을 압축해 들으며 숙연하게 귀를 기울였다. 혁명으로 민주주의를 쟁취한 덴마크 시민들에 대해 경의를 표하면서.

 

  “하지만 혁명에 대한 일반적인 개념과 달리 덴마크 혁명은 아주 싱겁게 끝났습니다. 당시 프랑스 대혁명에 고취된 덴마크 시민들이 3월 21일에 크리스찬보그 궁전으로 쳐 들어가 권력을 내놓으라고 요구하자, 당시 덴마크 왕 프레데릭 7세가 ‘그대들이 원한다면 주겠노라’ 고 답하면서 그 자리에서 끝난 것입니다. 사람들은 세 번 만세를 부르고 혁명을 축하했습니다.” 의외로 간단한 혁명이었다. 평화와 협상을 사랑하는 덴마크답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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