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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신의 코펜하겐 여행기_41. 덴마크 국립 미술관2
02/10/20  

덴마크는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 같은 서유럽 국가들에 비해 미술쪽으로는 크게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유럽 예술의 변방이었다고 할까. 덴마크 국민화가 함메르쇠이의 그림을 찾아 보는 것 외에는 미술관 자체로부터 크게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러나 덴마크 국립 미술관은 의외의 반전으로 우리를 맞아 주었다.

 

첫째는, 미술관 1층에서 카페테리아로 내려가는 공간에 전시되어 있는 한국 비디오 미술 작가 백남준의 작품들이었다. 유리 천장에서 자연광이 비쳐 드는 탁 트인 공간에 한눈에 봐도 그의 작품인 것을 알아 볼 수 있는 비디오 로봇들이 여러 대 서 있었다. 아마 그의 초기 비디오 작품들인 것 같았다. 비디오 기기 옆에 흰 물감으로 ‘백 남준’이라고 한글을 정답게 써 놓았다. 이국 만리 북구 미술관에서 갑자기 만난 한국 작가의 작품과 그의 작품 속에 등장한 익숙한 한글은 뜻밖에 큰 감동을 안겨 주었다. 미술관이 지리적으로 가깝거나 동시대 작가의 최근 작품이었다면 그렇게까지 울컥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태어난 땅은 멀리 있고, 당시에는 혁명적이었던 작품이 이제 미술사의 변천을 증거하는 자료가 되어 이국 미술관 한구석에 어리둥절하게 서 있는 모습을 보니 마음에 연민이 밀려왔다. 놀라움과 기쁨, 서글픔이 묘하게 섞인 감정.

 

두 번째는, 아까 밖에서 보았던 엘리자베스 웨어링의 작품이었다. 작품보다는 프로젝트라고 부르는 것이 적합한 그녀의 전시는 뜻밖에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 주었다. 자신은 영국인인 웨어링이 덴마크인들의 가족에 대한 개념을 탐구하기 위해 오랜 시간을 거쳐 진행한 프로젝트였다. 그녀는 가족과 가족 내의 다이나믹, 그리고 인간 관계의 내면에 대해 천착해 왔는데, 이번에는 자신의 가족이 덴마크의 전형적인 가족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사진을 공모해서 수집한 수천 장의 덴마크인 가족 사진 전시였다.

 

전시실 벽에 빽빽하게 진열된 사진들은 덴마크 전역에서 보내 온 덴마크 가족들의 모습이었다. 이 중에서 웨어링이 대표적인 덴마크 가족이라고 엄선한 것이 바깥에서 본 흑백 부부와 혼혈 자녀의 가정이었다. 이 전시가 흥미로웠던 것은 나름대로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지고 있는 덴마크인들이 21세기에 들어선 현재까지도 자신들의 정체성과 국가 정체성을 고민하고 모색하는 것이 인상적이었기 때문이다. 현재 다른 유럽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제 3세계에서 유입되는 비 백인계 이민자들로 인해 이제는 덴마크의 정체성이 변화해야 할 시점이라고 느끼는 것 같았다. 외국으로부터의 입양아들에 대한 문제도 거론이 되었는데, 덴마크는 60년대부터 80년대까지 제 3세계 국가들로부터 입양아를 받아들였으나 이제는 중단한 상태라고 한다. 그 이유는 그 ‘못 사는 나라들’에게 이제는 다른 방법으로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잘 이해하지는 못했다.

 

우리는 따뜻하고 쾌적한 미술관 안을 천천히 돌며 열심히 관람했다. 방문의 목적이었던 함메르쇠이 전시실에서는 그동안 사진이나 영상으로만 보았던 그의 작품들을 실제로 볼 수 있어서 만족하고 행복했다. 그의 작품들을 코펜하겐에서 실제로 보니 그을음과 어둠의 막으로 한 겹 덮여 있는 것만 같은 그의 그림들이 백 퍼센트 이해 되었다. 기나긴 겨울 밤이 계속되는 북구의 한적한 나라에서는 필연적으로 그런 고요한 잿빛 그림이 나올 수밖에 없다는 것을 피부로 직접 느낄 수 있어서 오랜 의문이 해소되는 기분이었다. ‘당신은 이 땅의 모든 것을 사랑하고 있는 그대로 그려냈던 진정한 덴마크 화가이셨군요.’ 나는 흠모하는 북구의 화가에게 경의를 표하고 그의 전시실에 아쉬운 작별 인사를 하고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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