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여행
홈으로 그림여행
메두사 호의 뗏목 (The Raft of the Medusa c.1818-1819)
04/27/20  

테오도르 제리코 (Theodore Gericault 1791-1824)

(캔버스에 유화. 491 cm x 716 cm. 파리 루브르 박물관)

 

  프랑스 낭만주의 화가 테오도르 제리코는 스물일곱 살 때 이 대작을 그려냈다. 정치적, 사회적 부조리에 반항하는 작품에 인생을 걸었던 젊은 화가의 열정이 그대로 드러난다.

 

  이 그림의 소재는 당시 유행이었던 신고전주의 화풍의 영웅담이 아니라 실제 일어났던 비극적인 조난사건이다. 1816년 7월 2일 세네갈을 식민지로 삼기 위해 정착할 이주민 등 400여 명을 태우고 떠난 프랑스 해군함 메두사호가 난파했다. 선장과 고급 선원, 총독과 그의 가족 등 250명은 여섯 척의 구명 보트에 나누어 탔다. 나머지 150명이 탈 곳이 없자 군함에 싣고 있던 목재로 뗏목을 급조해 태운 뒤 구명보트에 매달아 끌고 가기로 했다. 그러나 뗏목의 무게로 구명 보트가 제대로 나아가지를 못하자 선장은 뗏목을 묶었던 밧줄을 잘라내 버리고 도망가 버린다.

 

  뗏목에 탄 150명은 마실 것도 먹을 것도, 또 방향을 잡을 키도 없이 15일 동안 바다를 표류하게 된다. 7월 17일 지나가던 아르귀스호에 의해 극적으로 구조되었을 때 살아남은 사람은 15명뿐이었다. 굶주림과 탈수, 죽음과 질병, 폭동과 광기 끝에 벌어진 살인과 식인으로 뗏목 위는 생지옥과 다름없었다. 제리코의 그림은 구조선을 발견한 순간의 뗏목 위 모습을 묘사했다.

 

  이 작품이 1819년 아카데미아에 처음 선보였을 때 격렬한 비난과 찬사가 함께 쏟아졌다. 아름다운 형식을 통해 고상한 인간성을 표현한다는 신고전주의 화풍이 막을 내리고, 삶 속에서 인간이 갖는 극단적 감정을 표현하는 낭만주의가 시작하는 순간이었다. 무엇보다도 25년간 전장에 나가 본 적도 없는 무능한 왕당파 인물이 왕정복고기에 뇌물로 매수해 군함의 함장으로 임명되어 벌어진 인재라는 것이 밝혀지며 통렬한 사회고발 작품이 되었다. 또한, 프랑스 정부가 도덕적 해이와 부패가 몰고 온 참사에 대해 근원적인 반성을 하는 계기가 되었다.

 

  제리코는 끔찍한 사건을 캔버스에 재현해 잔혹한 현실을 고발했지만, 궁극적으로는 인간에 대한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려 했다. 형식적인 매너리즘에 빠진 화단에 낭만주의 바람을 몰고 온 이 작품은 낭만주의 화가 들라크르와, 터너, 그리고 사실주의 화가 쿠르베에 이르기까지 후대의 화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김 동백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