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효신의 런던여행기 테이트 모던 갤러리 (Tate Modern Gallery)
06/04/18  |  조회:103  

버로우 마켓에서 테이트 모던 갤러리까지는 약 0.7 마일 정도이다.  빨리 걸어가면 10분 이내에 도착할 거리지만 무릎이 아파서 천천히 걸어갔다. 해리와 R이 앞서 걸어가고 나는 그 뒤를 따라갔다. 런던 여행 내내 잘 버티어 주던 무릎이 계속 되는 강행군으로 오늘은 심하게 아파온다. 아이들이 뒤 돌아보면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손을 흔들어주고, 보지 않으면 몰래 절뚝거리기도 하면서 열심히 따라갔다.

 

테이트 모던 갤러리는 전기 발전소 건물을 개조해 건축한 미술관이다. 밀레니엄 브리지를 사이에 두고 템즈 강 북쪽에는 세인트 폴 대성당이, 남쪽에는 테이트 모던 갤러리가 직선으로 마주 보며 위치해 있다. 전기발전소는 1981년에 문을 닫았고, 미술관은 1995년에 공사를 시작해 2000년에 문을 열었다. 영국의 테이트 그룹(Tate Britain, Tate Liverpool, Tate St. Ives, Tate Online)에 속하는 미술관으로 1900년 이후부터 현재까지의 영국 미술과 국제 현대 미술을 전시한다.

 

테이트 모던 갤러리를 보고 싶었던 이유는 그곳에 전시된 미술작품들보다 전기발전소를 개조해 만든 그 건물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발전소가 문을 닫고 개발업자들이 건물을 철거하려고 하자 런던 시민들이 건물을 보존해 새로운 목적으로 사용하자는 캠페인을 벌인 끝에 테이트 갤러리가 미술관 부지로 선정했다고 한다. 수명이 다한 공업 시설을 철거하지 않고 한 해에 수 천만의 관람객이 찾아오는 유명 미술관으로 탈바꿈 시킨 그 비전이 대단하다고 늘 생각했다. 세계적인 코스모폴리탄 도시이지만 그 속에 영국의 역사와 전통을 보존하려는 런던 시정부와 시민들의 연합적 노력의 결실이었다. 원래 전기발전소는 동서로 가로지르는 길이가 200 미터였고, 건물 자체는 철제 골조와 벽돌로 만들어졌으며 그 중앙에는 99미터 높이의 굴뚝이 있었다. 미술관은 그 기본 구조를 하나도 없애지 않고 그대로 살렸다. 미술관 건물 자체가 하나의 건축 작품으로 그 스스로 테이트 모던에서 으뜸가는 전시 작품이다.

 

여기도 역시 입장은 무료. 미술관으로 들어서자마자 어마어마한 중앙홀이 나타났다. 원래 터빈 홀(Turbine Hall)이었던 공간이다. 비행기 격납고보다 더 크고 높게 느껴지는 공간에 오후의 햇살이 비쳐 들고 있는 그 광경은 좋은 미술작품을 관람하는 것 못지 않게 감동적이었다. 그 중앙 홀을 중심으로 원래 보일러 하우스와 스위치 하우스였던 양쪽 건물을 전시 공간으로 만들었다. 전시관들을 둘러 보는 내내 유리 벽 너머로 터빈 홀을 내려다 보게 되는데 그 거대한 공간에 사람들이 걸어 다니고 있는 모습은 그대로 미래의 이미지였다.

 

건물에 더 관심이 있었던 터라 미술품들은 대강 둘러 보게 되었다. 런던의 쟁쟁한 갤러리를 돌면서 온갖 고전 작품들을 다 둘러 보고 난 후라 실험적인 현대 미술이 어쩐지 시들하게 느껴지는 면도 없지 않았다. 오후의 피곤도 몰려 오고, 무릎도 계속 아파서 나는 좀 쉬기로 했다. 터빈 홀을 내려다보는 복도를 따라 검정 가죽 소파가 죽 배치되어 있길래 나는 아이들에게 둘러 보고 오라 말하고 소파에 몸을 묻었다. 부드러운 가죽에 몸을 맡기자 누적되어 온 피곤이 한꺼번에 몰려 오면서 나는 그대로 잠이 들었다. 과거가 일상 속에 그대로 숨쉬고 있는 런던에서 미래의 비전을 제시하는 혁신적인 미술관 모퉁이에 고단한 한 인간이 잠들어 있는 그 모습은 그 자체로 미술적 퍼포먼스가 아니었을까? 테이트 모던 갤러리 한가운데서 깜박 잠든 그 사이에 나는 깊은 꿈을 꾸었고, 아이들이 돌아 와 깨웠을 때는 지쳤던 육체가 활기를 되찾아 생생해졌다.

 

미술관에서 나갈 무렵, 터바인 홀에는 짧은 런던의 오후가 저물어 서서히 석양이 비쳐 들고 있었다. 우리는 밖으로 나와 99미터 높이의 굴뚝이 하늘로 우뚝 솟아있는 미술관 건물 외관을 감상하고 아쉬운 발걸음을 돌렸다. 이제 런던 여행의 피날레, 그 유명한 리버 카페에서의 저녁식사가 기다리고 있다. 해리도 같이 가고 싶었지만 돌아가 공부를 해야 한다고 해서 그 곳에서 헤어졌다. R과 나는 블랙 프라이어스 스테이션에서 튜브를 타고 해머스미스 (Hammersmith)역까지 가야한다. 걷는 시간까지 약 1시간 걸릴 예정. 우리는 들뜬 마음으로 ‘검은 수사들’이라는 이름의 튜브 스테이션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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