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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련은 하느님의 발자국 소리(마태 14,22-33)
06/04/18  |  조회:104  

사람은 생애를 통해서 올라가는 때와 내려가는 때를 만납니다. 그런데 이런 인생의 여정에서 중요한 것은 올라갈 때보다도 오히려 내려갈 때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성공할 때보다도 실패할 때가 실은 하느님을 더 깊이 체험할 수 있는 은혜로운 시기입니다.

 

엘리야는 갈멜산에서 바알의 숭배자들과 싸워서 그들의 예언자 450명을 모조리 죽였습니다. 아주 통쾌하고도 멋진 승리의 장면이었으며 이때 엘리야의 놀라운 기세는 아무도 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바알의 광신자였던 왕후 이세벨이 엘리야에게 복수를 다짐하자 그는 거꾸로 무서움에 떨며 도망치는 신세가 됩니다. 하늘을 찌를 듯한 그 믿음의 기운이 한 순간에 꺾여서 하느님께 죽여 달라는 애원도 했습니다. 

어제의 당당한 승리자가 오늘은 패배자가 되어 자기 몸 하나 숨길 수가 없었고 놀라운 신앙을 증거하였던 그도 하느님은 자기를 버렸다고 판단했습니다. 신앙의 위기를 만난 것이며 이제 더 이상의 탈출구가 없었습니다. 바로 이때 엘리야는 하느님을 새롭게 만납니다. 하느님은 그를 버린 것이 아니었으며 새로운 차원에서 그를 만나기를 원하셨습니다. 마치 어제의 승리로 오만해질 수도 있는 엘리야를 하느님이 아니시고는 ''''조용하고 여린 소리''''에서 당신을 드러내셨습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옵니다. 5천 명을 배불리 먹이신 빵의 기적 다음에 예수님께서는 의도적으로 제자들을 배에 먼저 태워 보내십니다. 풍랑이 그들을 괴롭힐 줄을 뻔히 아시면서도 새벽 4시까지 기다리십니다. 마치 당신이 없는 세상을 어디 좀 살아 보거라 하는 식으로 버려두셨다가 나중에 물 위를 걸어서 가시는데 제자들은 이때 가까이 오시는 주님을 유령으로 착각하여 더 큰 두려움에 떱니다. 그러나 바로 그때 주님은 "나다, 안심하여라."하시며 배에 오르시자 바람은 그치고 풍랑은 잔잔해졌습니다. 

 

인생이라는 배를 저어 가는 호수에는 언제나 사나운 바람과 성난 물결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시련의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나다, 안심하여라."하시는 그분의 목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주님은 진정 우리가 내려갔을 때 그 밑바닥에서 만날 수가 있습니다. 

 

오래 전의 얘기입니다. 어떤 형제가 몇천만 원을 가지고 사업을 하다가 망해서 수중에 꼭 7만원이 남더랍니다. 너무도 허망하고 답답했던 그는 성당을 찾아가 신부님께 조언을 청했더니 신부님은 "그 7만 원은 뭐하러 가지고 있노. 내 3만 원을 더 줄 테니까 10만 원을 채워서 하느님께 봉헌하고 진짜 빈주먹으로 다시 시작해 보거라." 하시더랍니다. 

형제가 처음엔 그 말씀을 듣고 참으로 기막힌 생각이 들더랍니다. 없는 사람 도와줄 생각은 않고 ''''벼룩의 간''''마저도 뺏으려 하는구나 하는 착각도 들었답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니 어차피 망한 것, 7만 원이 있어도 그만이고 없어도 그만이라는 판단이 들더랍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에 자기가 거꾸로 살았던 사실을 깨닫고는 신부님 말씀대로 무일푼으로 다시 시작했는데 지금은 크게 성공했습니다.

 

물 속에 빠졌던 베드로의 주책(?)도 일품입니다. 소위 첫째가는 제자라는 그가 그 모양이니 다른 사람들이야 오죽 하겠습니까마는 물 속에 빠지는 인간의 그 허망한 현실에서 주님께 온전히 매달렸기 때문에 베드로는 자기를 잡아 일으키시는 그분의 손길을 체험하게 됩니다. 역설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내려가는 때가 바로 그분을 만나는 때요 새롭게 크게 일어서는 때입니다. 엘리야도 그랬고 베드로도 그랬습니다. 

 

마음에 풍랑이 심하고 분노의 불길이 크게 솟구칠 때는 하느님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시기를 참고 견디면 하느님의 ''''여린 소리''''를 진실로 체험하게 됩니다. 실패해서 고생할 때나 시련으로 몸부림칠 때는 하느님이 우릴 찾아오시는 발자국 소리입니다.

 

강길웅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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