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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신의 노르웨이 여행기_17. 한자 박물관
06/29/20  

다시 푸니쿨라를 타고 산을 내려왔다. 그동안 눈이 비로 바뀌어 산 아래 세상은 푹 젖어 있었다. 나는 플레이바넨 역을 나와 천천히 언덕을 걸어 내려 왔다. 그대로 쭉 가면 광장이 다시 나온다. 광장 맞은편 브뤼겐 지구가 시작되는 길목에 한자 박물관(Hanseatisk Museum)이 보였다. 벽돌 색과 노란색이 잘 어우러진3층 목조건물이다.

 

베르겐에는 브뤼겐 박물관을 비롯해 여러 개의 박물관이 있는데 꼭 하나 밖에 둘러 볼 시간이 없다면 한자 동맹(Hanseatic League) 관련 전시를 하는 한자 박물관을 선택하는 것도 좋다고 들었다.

 

12, 13세기에 독일을 중심으로 유럽에서 결성된 상인단체인 한자 동맹은 14세기 중반쯤에는 도시 동맹으로 성장해 무역을 비롯한 중세 상업 활동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경제, 정치적으로 힘을 발휘하면서 유럽 여러 도시에 한자 특권을 가진 지부를 세우게 되는데 전성기에는 200여 개의 유럽 항구와 도시에 동맹 지부가 있었다고 한다. 베르겐이 언제부터 한자 상인들과 교역을 시작했는지는 확실치 않으나 12세기경에도 독일과의 사이에 무역 활동이 있었다고 한다. 그 후 1360년에 한자 동맹에 가입하여 거의 400여 년 동안 독일에서 건너 온 한자 상인들이 브뤼겐 지역에서 무역항을 지배하게 되었다.

 

베르겐은 한자 동맹의 역사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다른 한자 지부와 달리 브뤼헤, 런던, 노브고로트와 함께 4대 한자 상관에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베르겐은 중세 유럽 무역에 영향력 있는 도시여서 중세 해상 지도에 런던은 없어도 베르겐은 또렷하게 표기되어 있다고 한다. 16세기 초까지 북방 유럽 무역을 독점하며, 군사력과 사법 자치권까지 행사한 한자 상인들의 활동이 새로운 해상 루트 발견으로 무역의 대세가 신대륙으로 옮겨감에 따라 차츰 사라진 후에도 한자 동맹의 역사는 베르겐에서 가장 오래 지속되었다.  

 

그러므로 중세 베르겐의 역사는 한자 동맹의 역사와 운명을 같이 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고, 그 역사를 알아 보려면 유네스코 지정 세계 유적지인 한자 박물관 방문이 적격일 것이다. 나는 큰 기대를 품고 한자 박물관 앞에 도착했다. 그리 크지 않은 목조건물에 입구도 한번에 한 명씩밖에 못 들어갈 정도로 아주 작았다. 박물관 시간표를 보니 겨울에는 오전 11시부터 오후 2시까지 딱 3시간만 오픈. 거의 1시가 되어 가고 있으니 문 닫을 때까지 한 시간 정도 남았다. 나는 얼른 티켓을 사서 전시관 안으로 들어 갔다.

 

제일 먼저 나오는 메인 전시관은 베르겐 한자 동맹의 역사와 활동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놓은 어둑한 공간이다. 중세 해상 지도가 눈에 띄었다. 파란 바다에 흰 돛배들이 떠 있고 노르웨이 지도 위에 ‘베르겐’이라고 분명히 표기가 되어 있었다. 당시 사용하던 물건들도 스포트 라이트 조명을 받으며 전시되어 있었다. 가장 신기한 것은 여기저기 매달아 놓은 말린 대구였다. 천장 높은 곳에는 커다란 대구 한 마리를 달아 놓았고, 그보다 낮은 곳에는 작은 대구로 한아름 쌓아서 매달아 놓았다. 나중에 들은 말인데, 베르겐에서는 천장에 매달아 놓은 말린 대구가 행운과 풍요의 상징이라고 한다(정말로 나중에 베르겐 곳곳에서 말린 대구와 마주쳤다). 벽 앞에 전시된 중세 시대 나무통들 위에도 큼직한 말린 대구가 걸쳐져 있었다. 그 옆에는 다소 무서운 모양의 나사가 달린 큼직한 나무틀 같은 것이 있었는데 설명을 읽어 보니 대구 간유를 짜는 나무틀이라고 적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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