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홈으로 여행
김효신의 노르웨이 여행기_21. 브뤼겐 (Bryggen) 2
07/27/20  

나는 계속 내리는 비를 맞으며 브뤼겐 골목 안으로 더 깊숙이 들어갔다. 수백 년 된 목조 건물들이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볼 정도로 나무 골조가 선명한 골목 안은 뜻밖에도 상점으로 가득 차 있었다. 주로 의류와 선물, 기념품 등을 취급하는 가게들이었다. 환하게 불을 밝힌 가게 안은 따뜻하게 손님을 맞을 준비가 되어 있는 듯했고, 가게 밖 골목에는 소박한 크리스마스 장식들이 조롱조롱 매달려 있었다.

 

나는 시간 여행자가 된 듯 중세 노르웨이 도시의 분위기에 잠겨 천천히 골목 끝까지 걸어 갔다. 내 인생에서 걸어 본 골목길 중 가장 오래된 골목길이 아닐까 생각하면서. 골목 끝에는 아까 멀리 보이던 예쁜 동화책 집이 가까이 다가왔다. 자그만 나무집 앞에는 크리스마스트리가 서 있었다. 역시 선물가게인가 보다. 아늑하게 불을 밝혀 놓았다. 그림 같고, 꿈 같은 분위기가 깨질까 두려워 가게 안으로는 들어가지 않았다. 분명히 가게 안에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옛 기억을 말해주는 고요한 골목 분위기를 깨뜨리기 싫었다.

 

동화책 집을 돌아 골목 끝으로 가 보았다. 갑자기 넓은 광장이 나왔다. 큰 건물들도 있다. 옛날에 창고로 쓰던 곳일까? 돌로 만든 직사각형 우물도 보이는데……잠깐, 저게 뭘까? 흰 창고 건물 우물 앞으로 뭔가 커다란 검은 물체가 기어 나오고 있는 듯 하다! 나는 멀리 서서 자세히 살펴 보았다. 말린 대구였다! 가히 10 미터가 넘어 보이는 길이에, 바짝 말린 몸통을 그대로 재현한 말린 대구의 조각상이다. 검은 대구 조각상 표면은 하루 종일 내리는 비에 젖어 반질반질 빛나고 있었다.

 

나는 빗 속 광장을 가로질러 그 신기한 물고기 앞으로 달려 갔다. 검은 돌받침 위에 고정시켜 놓은 말린 대구 조각상은 놀랍게도 나무로 만들어져 있었다. 바짝 말려서 줄어 든 몸통, 쑥 들어간 눈, 말라 붙은 지느러미, 아가미 사이로 삐죽삐죽 나와 있는 이빨까지 정말 완벽한 말린 대구 모형이다.

 

중세 베르겐을 북유럽 최고의 무역항으로 만드는데 기여한 일등 공신 대구는 그렇게 거대한 나무 조각으로 만들어져 기념되고 있었다. 검은 대구 주위를 돌면서 나는 그 옛날 북쪽 바다에서 잡은 살찐 대구를 가득 실은 고깃배들이 속속 베르겐 항으로 몰려드는 광경을 상상해 보았다. 항구에 부려 놓은 대구에서 간유를 짜고, 소금에 절여 말리고, 여기 창고들에 가득 쌓아 놓았다가, 또 배에 실어 유럽 전역으로 날랐을 것이다. 박진감 넘치는 상상 속에 비린내와 짠 소금 내음까지 코에 맴도는 듯했다.

 

말린 대구 조각상이 하도 마음에 들어서 나는 아무도 없는 브뤼겐 골목 안 광장에서 한참을 머물렀다. 잿빛 하늘에서는 계속 비가 내리고, 적막한 광장에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문득, 오른쪽으로 올려다 보니 언덕 위에 내가 묵고 있는 호텔이 보였다. 게다가 호텔 3층 코너에 위치한 내 방이 보인다! 아, 창 밖으로 내려다보면 눈에 들어오는 빨간 지붕들이 바로 이곳이었구나!

 

숙소가 가까이에 있다는 것을 알고 나니 갑자기 피로가 몰려 왔다. 생각해보니 점심도 변변히 먹지 못했다. 추위 속에 비를 맞으며 돌아다니는데 잘 먹어야겠다. 오늘은 실내 어시장에 돌아가 킹크랩을 먹기로 했었지. 배고프니까 저녁 시간 전에라도 빨리 가 먹기로 했다. 그리고 내일부터는 베르겐 대구 요리만 먹기로 결심했다.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