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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물화 (Still Life c.1650)
07/27/20  

프란시스코 주르바란 (Francisco Zurbaran 1598 – 1664)

(캔버스에 유채 46 cm x 84 cm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

 

정물화는 인물이나 풍경이 아닌 사물을 인위적으로 배치해 놓고 그린 그림이다. 서양화에서 정물화에 등장하는 사물의 종류는 매우 다양하다. 전통적 정물화에서는, 화가들이 대상 사물을 선택할 때에 그 사물이 상징하는 의미에 대해 깊이 생각했다. 식물이나 동물 같은 생명체를 그릴 때에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스러질 생명의 유한성을 암시했고, 그림 속에 시계나 해골을 배치함으로써 시간에 대한 성찰을 강조했다.

 

16세기 스페인 화가 프란시스코 주르바란이 그린 이 그림은 대상 사물의 선택과 그 배치에서 특이한 정물화로 평가된다. 암흑의 배경 앞에 놓인 평범한 나무 테이블, 그 위에 네 가지 다른 모양의 그릇들이 배치 되어 있다. 왼쪽부터 세공이 섬세한 백랍 컵과 쟁반, 하얀 도자기 화병, 붉은 점토 화병, 그리고 맨 오른쪽 끝에 도자기 물병과 백랍 쟁반이 그려져 있다. 이 그릇들은 그다지 화려하진 않지만 뭔지 모르게 아끼고 귀하게 쓰는 물건이라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이 정물화의 목적은 그려진 물건들의 아름다움을 드러내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평범한 물건들이지만 특별한 분위기를 지니는 개체로 표현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이 그림 속에는 시간의 흐름을 말해주는 요소가 하나도 없다. 암흑을 배경으로 일정한 간격을 두고 정교하게 그려져, 어딘지 모르는 방향으로부터 비쳐 드는 빛 속에 네 가지 물건들이 고요히 존재할 뿐이다. 이 압도적인 간결함과 엄숙성은 거의 영적이기까지 하다.

 

16세기 가톨릭 스페인은 종교가 정치, 사회, 문화 전반을 지배하는 영성의 왕국이었다. 헌신과 절제를 강조한 종교적 열정은 미술에도 영향을 미쳐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에 소장된 그 시대 작품들은 하나같이 이 정물화와 비슷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빛과 그림자 속에서 존재의 겉모습이 아니라 내재된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이 그림 앞에 섰을 때, 모든 잡음과 망상이 사라졌다. 침묵을 가르쳐 주는 그림, 영원을 보여주는 그림이었다.

 

김 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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