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효신의 런던여행기 리버 카페 (The River Café) 2
06/18/18  

맛없는 음식을 먹으며 비좁은 테이블 사이에서 스트레스까지 받으니 생선 요리 후에는 ‘에잇, 그만 먹자’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계산서를 달라고 할까 생각하면서 R의 얼굴을 보았다. 먹는 것을 무엇보다도 더 중요시하는 아이의 얼굴이 별로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아니야. 디저트 주문하고 끝까지 가 보자’ 생각하며 치즈 플레이트와 레몬 타르트, 그리고 포트 와인과 커피를 주문했다. 디저트는 대 성공. 역시 인내심을 가지고 끝까지 기다려 봐야 하나 보다. R도 디저트에 와서 괜찮아졌다고 만족해 했다.

 

기분이 겨우 풀려서 맛있게 디저트를 먹으며 도란도란 얘기를 하다가, 문득 R이 런던에서 공부하느라 그때 미국에서 개봉한 영화 ‘미녀와 야수(Beauty and the Beast)’를 아직 못 봤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 그 영화 꼭 봐야 해. 너무 재미 있어.’라고 말하는데 R의 눈이 등잔처럼 커졌다. 그리고 ‘엄마! 엄마! 엠마 톰슨(Emma Thompson)! 스탠리 투치(Stanley Tucci)!’라고 속삭인다. 뒤돌아 보니 내 뒤 커다란 둥근 테이블 일행 중에 ‘미녀와 야수’에 나오는 영국 영화 배우 엠마 톰슨이 앉아 있었다! 게다가 영화에 같이 출연한 스탠리 투치가 막 그 테이블로 걸어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주전자 아줌마(Mrs. Potts)로 나왔던 엠마 톰슨은 마치 빛으로 둘러싸인 것처럼 환하게 아름다웠고, 피아노 아저씨(Cadenza)로 나온 성격 배우 스탠리 투치도 실제로 보니 정말 미남이었다.

 

R과 나는 모르는 척 품위를 지키면서 엠마 톰슨과 스탠리 투치를 가끔 뒤돌아 보았다. 그리고 리버 카페 음식이 맛없는 것을 우리가 좋아하는 영화 배우들을 팔을 뻗으면 닿을 거리에서 본 것으로 깨끗이 다 용서해 주기로 했다. 마음이 즐거워져서 디저트도 맛있게 다 먹었다. 멍청한 우리 웨이터가 계산서를 가져 왔다. 별로 잘 먹은 것도 없는데 가격이 세기는 셌다. 게다가 서비스도 그저 그렇고 테이블도 다닥다닥 붙어서 불편했지 않은가. 그러나 리버 카페의 명성(?)과 자리 값, 그리고 ‘미녀와 야수’ 영화 배우 구경 값까지 두루두루 생각하면 만족한 가격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게다가 R이 런던에 와서 한번도 Fine Dining을 못 해 보았다고 했지 않은가. 다음에는 리버 카페보다 더 맛있고 멋있는 레스토랑을 찾아 가기로 했다.

 

돌아 가는 길에 튜브를 갈아타며 갈 생각을 하니 너무 피곤해져서 우리는 우버(Uber)를 불렀다. 이제는 완전히 깜깜해져서 아무 것도 안 보이는 레스토랑 주위에는 템즈강으로부터 아련한 강물 내음이 바람에 실려 오는 것 같았다.

 

우버를 타고 오면서 우리는 서로 어깨를 기대고 꾸벅꾸벅 졸았다. 내일은 이탈리아 피렌체(Florence)로 떠난다. 5월 5일에 도착해서 6일 동안 정말 정신없이 보냈다. 피곤하고 추웠지만 알찬 여정이었다. R과 함께 했기 때문에 더욱 즐겁고 편안했다. 이렇게 하루 종일 딸과 붙어 다닌 것이 얼마 만이었나? 이제 또 함께 피렌체로 떠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포근해지면서 ‘피렌체에서는 또 무엇이 우리 모녀를 기다리고 있을까?’하는 즐거운 기대에 부풀었다.

우리를 태운 우버는 런던 거리를 가로 지르며 쇼딧치를 향해 힘차게 달리고 있었다. 창밖으로는 런던의 야경이 넘실거리며 지나갔다. 온 나라가 역사와 전통 그 자체인 것 같은 영국. 그리고 우리 딸이 한 학기를 머물렀던 런던. 다음에는 시간을 넉넉하게 잡고 느긋하게 다시 한 번 방문하기를 기원하며 나는 어깨에 기대 잠이 든 R의 손을 꼭 잡았다. 아직도 추운 5월 런던에서의 마지막 밤이 그렇게 저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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