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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기억 (Memory of a Journey c. 1955)
09/14/20  

르네 마그리트 (Rene Magritte 1898 – 1967)

(캔버스에 유채 30 cm x 30.5 cm 개인 소장품)

 

대대로 유럽인들의 로망은 이탈리아로 여름 여행을 떠나는 것이었다고 한다. 장화처럼 생긴 이탈리아 반도의 남쪽에서 북쪽까지 둘러보는 여행, 유럽인이 아니더라도 꼭 해 보고 싶은 여행이다. 그 중에서도 이탈리아 중서부에 위치한 토스카나 지역은 역사 유적과 예술 유산, 그리고 아름다운 자연 경관으로 유명해서 죽기 전에 꼭 한 번 가 보고 싶은 여행지 열손가락 안에 들어가곤 하다.

 

그 토스카나 지역에 피사(Pisa)라는 도시가 있다. 설명할 필요도 없는 ‘피사의 사탑’이 있는 곳이다. 12세기 건축 당시 기반이 너무 무른 땅에 세워져 조금씩 기울어져가는 종탑이다. 14세기에 완공 되었으나 그때쯤에는 상황이 더 악화되었다고 한다. 그 후, 수 백 년 동안 조금씩 계속 기울어져 가는 종탑은 전 세계 사람들의 호기심의 대상이 되었고, 피사는 덩달아 유명한 관광지가 되었다.

 

벨기에 초현실 작가 르네 마그리뜨가 그린 이 그림은 기울어져 가는 피사의 사탑을 깃털 하나가 받치고 있는 그야말로 초현실적인 이미지를 보여준다. 불행의 원인이 된 무른 땅 기반을 묘사하듯 갈색 땅은 엷게 대충 그려져 속절없이 무너지고 말 것 같은 불안감을 더한다. 하늘에 구름과 함께 그려져 있는 네모난 물체들은 현대의 고층건물들을 암시하는 것 같은데 그들의 견고함에 견주어 볼 때 기울어진 피사의 사탑은 그저 위태롭기만 하다.

 

여행의 기억이란 무엇일까? 돌아 온 후에 시간이 흐르면서 여행에서 보고 들은 것, 경험한 것, 느낀 것, 그 모든 것들이 어우러져 서서히 기억으로 자리잡아 갈 때 상상력은 사실과 교묘한 조합을 이루며 그 기억 속으로 스며 들어간다. 그래서 기억 속의 여행은 뚜렷한 사건보다 아련한 이미지, 느낌, 인상들이 지배할 때가 많다. 이 한 폭의 초현실파 그림도 아마 그런 여행의 기억이 아닐까 싶다. 기울어져가는 신비한 사탑의 인상과 사탑의 운명에 대한 안타까움이 이러한 그림으로 남은 것이 아닐까.

 

수 년 전, 토스카나 지방 여행 때 들렀던 이곳에서 ‘피사의 사탑’을 올려다 보며 머리 속에 이 그림을 떠 올렸었다. 그리곤 상상으로 탑 옆에 깃털도 세워보고 숟가락도 세워 보고 하며 한참 머물렀던 생각이 난다.   

 

김 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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