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여행
홈으로 그림여행
니니의 회화 [로마] (Nini’s Painting [Rome] c. 1971)
06/19/18  

싸이 톰블리(Cy Twombly 1928 – 2011)

(캔버스에 건축용 페인트, 왁스, 크레용, 연필  260.99 cm x 300.36 cm , 로스엔젤레스 브로드 뮤지엄)

  

대부분의 사람들은 추상화를 만나면 곤혹스러워 한다. 시각적으로 알아볼 수 있는 현실의 이미지 대신에 화면 가득 채워진 색채, 질감, 붓 자국 등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난감하기 때문이다. 이는 시각적 정보로부터 의미를 도출하고자 하는 인간의 본능 때문이기도 하다. 추상화 앞에서는 대개 ‘이게 뭘 그린 거지?’에서 시작해 ‘이게 무슨 뜻이지?’ 묻다가 때론 ‘이 정도는 어린애도 그리겠네’ 라며 돌아 서기도 한다.

 

그야말로 ‘어린애가 그린 낙서같은 그림’이 미국 추상표현주의 화가 싸이 톰블리의 작품이다. 톰블리는 미국에서 공부하고 아프리카, 유럽 여행에서 예술적 영감을 받은 후 로마에 정착해 살며 활동한 화가이다. 평생 로마에서 살았기 때문에 자신의 예술적 근원이 되는 미국 추상 표현주의 화단과는 상대적으로 멀리 떨어져 그림을 그렸고, 그로 인해 독자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할 수 있었다는 평을 받는다.

 

로스엔젤레스 브로드 뮤지엄에서 만난 이 그림은 싸이 톰블리 그림의 특성을 아주 잘 나타낸 작품이다. 가로, 세로 거의 3미터씩 되는 거대한 캔버스에 자유롭게 물감을 입히고 그 위에 왁스를 덧 입힌 후, 크레용과 연필로 자유분방하게 자국을 남겼다. 낙서인지 드로잉인지 아니면 암호인지 그 뜻을 알 길은 없다. 그저 화면 가득 넘실거리는 움직임이 느껴질 뿐이다.

 

이 그림은 톰블리가 미국 추상표현주의 대가 잭슨 폴락의 회고전을 관람한 후 잭슨 폴락의  그림들에 넘치는 생동감과 에너지에 영감을 받아 그렸다고 전해진다. 실제로 그림 앞에 서면 평면에 새겨진 크레용과 연필 자국들이 살아 움직이는 듯 생생하게 보인다. 그러면서도 한 편으로는 파스텔 색조의 연한 바탕에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듯 매우 서정적인 느낌도 난다. 한참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이 한 폭의 그림이 전하는 것은 의미가 아니라 어떤 몸짓, 그리고 그 몸짓의 기록이라는 깨달음이 온다.

 

브로드 뮤지엄은 새로 지은 건물이라 그런지 탁 트인 구조가 시원하고 환하다. 예약을 하고 입장해야 하므로 기다리는 시간이 좀 있는데, 그런 기다림 쯤은 너끈히 보상해 주고도 남을 만큼 커다란 흰 벽에 걸린 이 그림은 친근하고 우아하게 다가온다. 무엇을 그린 것인지 알아내려 애쓰지 말고 그저 그림이 자아내는 느낌과 분위기에 몸과 마음을 편안히 맡기면 된다.

 

김 동백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