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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신의 노르웨이 여행기_32. 바이킹들의 물길을 따라서
10/12/20  

온 세상이 고요해졌다. 페리호가 강물을 가르는 소리마저 들리지 않았다. 너무 조용해져서 사람들은 입을 다물고 앞만 바라보았다. 맑게 가라앉은 수면이 양쪽의 피요르와 하늘을 거울처럼 비추어 거대한 데칼코마니처럼 보였다. 저 멀리 검게 보이는 피요르 사이로 안개와 구름이 가득 떠 있는 장대한 광경이 다가오고 있다. 경외심이 들었다고 해야할까, 아니면 그냥 놀랐다고 해야할까? 나를 포함해 배 위에 탄 관광객들은 침묵 속에 앞으로 다가오는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까지 우리가 지나온 풍경은 구드방겐 마을에 가까워서 그런지 피요르 협곡 위에 눈이 쌓여 꽁꽁 얼어붙어 있기는 했어도 인간이 사는, 혹은 인간이 살 만한 곳이라는 느낌이 있었다. 노르웨이 강변 마을을 지나올 때는 색채감과 따스함이 어울려 배를 타고 지나가며 낭만마저 느낄 수 있었다. 지금 다가오고 있는 곳은 어떤 곳인지 알 수 없었다. 높이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그저 검고 장엄하게 보이는 피요르는 시야를 압도하며 우리 눈 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네료피요르는 약 20킬로미터 정도 계속된다. 높이는 가장 높은 지점이 1660 미터에 이른다고 하며, 피요르 사이 강물의 넓이는 가장 좁은 곳이 12미터에서 250미터, 가장 넓은 곳은 1 킬로미터쯤 된다고 들었다. 우리 앞으로 다가오는 지점은 아마도 피요르가 좁아지며 물길이 굽어지는 곳 같았다.

 

검게만 보이는 피요르가 얼마나 높은지는 전혀 알 수 없었다. 그저 그 중간쯤에 구름이 멈춰 서 있는 것만 보였다. 잿빛 하늘은 저 멀리 구름 위로 조금씩 보일 뿐이고 시야는 안개와 수증기에 싸여 푸르스름했다. 완벽하게 고요하고 모든 것이 정지해 있는 듯 느껴지는 가운데 내 머릿속에는 ‘장엄, 숭고, 웅장, 웅대’ 같은 단어들이 지나갔다. 배가 앞으로 나아갈수록 전혀 알지 못하는 세계로 들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거의 초현실적인 느낌에 사로잡혔다.

 

이것이 그 옛날 바이킹들이 나무로 배를 만들어 타고 피요르 사이를 지나 바다로 나아갈 때 보았던 광경이겠지. 조그만 목선 위에 몸을 싣고 이 침묵의 세계를 견디며,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아무 것도 모르면서 그들은 이 물길을 지나 앞으로 나아갔다. 나는 노르웨이 겨울 바람을 온 몸에 맞으며 바이킹들이 갔던 그 피요르 물길 위에 서 있었다.

 

배 위의 관광객들도 나와 똑같은 것을 느끼고 있었을 것이다. 깊이 열린 눈빛 속에 그 모든 것을 담으며 한마디도 하지 않고 제각기 생각에 잠겨 있었다. 지구의 여러 곳에서 모여든 사람들이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노르웨이 피요르를 함께 지나고 있는 동반자들이었다. 숨쉬기조차 어렵도록 추운12월 말 겨울에 21세기형 배를 타고 온 우리는 차갑게 얼어 붙은 무채색 풍경 속에 말없이 서서 태고의 공간같은 노르웨이 겨울 피요르 물길을 함께 지나가고 있었다.  

 

여름에 왔었다면 다른 풍경, 다른 느낌이었을까? 피요르와 산들이 녹음으로 우거져 명랑한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다시 온다 해도 꼭 겨울에 올 것이다. 찬란한 여름 속 아름다운 노르웨이도 좋겠지만, 나는 이 황량하고 웅장한 노르웨이의 겨울이 좋다. 바이킹들은 이 척박한 땅에서의 삶을 극복하기 위해 한없는 의지와 용기로 피요르 사이 물길을 건너 머나 먼 땅으로 나아갔다. 나는 이제 그것이 어떠한 여정이었는지 아주 조금이라도 알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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