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8호 표지이야기 “순종하고 배려하며 앞장서 옳음 실천해야”
04/27/18  

한국스카우트의 산 증인 임익선 대장 영면

 

한국스카우트의 산 증인 임익선 옹이 지난 13일 타계했다. 향년 85세.

 

한국의 스카우트 운동은 1922년 10월 조철호와 정성채에 의해 최초로 시작되었다. 10월 5일 조철호는 조선소년군을, 그해 9월 정성채는 조선소년척후단을 조직하였다. 두 단체는 1923년 3월 1일 통합되어 조선소년척후단이라 불렸다. 이후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으로 국호가 변경되면서 대한소년단으로 개칭되었다.

 

고 임익선 대장은 1946년 조선소년척후단 인천 제11대 영화소년대에 입대하면서 스카우트와 인연을 맺었으며, 평생을 스카우트로 산 한국스카우트의 살아있는 증인이었다.
고 임 대장은 1950년 한국전쟁(6.25)이 발발하자 그해 12월 초 대한소년단이 12세-16세의 2급대원 120명으로 조직한 전시구호대에서 활동했다. 고인은 당시 서울에서 피난민 소개, 방역, 한강 도강 안내, 교통정리 등의 임무를 수행했다.

 

고 임 대장은 지난해 ‘실버넷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당시의 상황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대한소년단 전시구호대 단원이 되기 위해서는 부모로부터 ‘나라가 위급함에 내 자식을 나라에 바친다’는 동의서를 받아야 했습니다. 인천에서 40여 명이 희망했지만 12명만 참가했어요.”

 

당시 전시구호대는 을지로 입구에 있던 보건사회부청사 1층을 본부로 사용했다.

“그곳에서 아침저녁으로 주먹밥 한 개로 끼니를 때워야 했고, 잠은 시멘트 바닥에 집에서 가져온 담요 한 장으로 잤습니다. 한밤중에 대원들이 추위를 이기지 못해 ‘엄마’를 울부짖어 큰 대원들이 품어주며 재웠습니다. 아침 6시 기상하여 을지로 사거리에서 사방으로 한 블록씩 맡아 조기청소를 했습니다. 아침 식사 후에는 구호활동을 하고 오후 5시에 돌아오곤 했어요.”

 

전세가 불리해지자 인천에서 미국 화물선 Victory 호를 타고 부산으로 이동하여 1951년1월 부산 은영극장에 짐을 풀고 구호활동을 이어갔다.

고 임 대장은 당시 상황을 이렇게 회고했다.

“부산에서도 서울에서와 같은 구호활동을 펼쳤어요. 한 가지 늘어난 활동은 부산 전 지역에 산재한 피난민 수용소에 매일 대원들을 배치하여 청소와 소독과 심부름도 했습니다. 식사는 하루 두 끼 주먹밥에 간장 한 숟가락에 김 두 장이 추가됐죠. 그해 겨울은 왜 그다지 추웠는지 밤이면 어린 대원들이 추워 잠을 못 이루고 집을 그리워하곤 했습니다.”

고 임 대장은 부산에서 그해 4월까지 구호활동을 벌이다 서울이 안정됐다는 소식에 각 단위대별로 귀향해도 좋다는 단장의 말에 따라 귀향했다.

 

귀향 후에도 고 임 대장의 스카우트에 대한 열정은 식지 않았다. 전쟁이 끝나지 않은 1952년 부산에서 열렸던 제1회 한국잼버리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인천에서 부산까지 걸어 간 일화는 지금도 한국스카우트에서는 전설처럼 회자되고 있다.

 

고 임 대장은 이후 1955년 대한소년단 최초로 인천 창영유년대를 조직해 지도자로 활동했으며, 대한소년단 인천지방연맹 사무국장, 대한소년단 중앙본부 수품부장 겸 관리국장, 중앙훈련소 소장 등을 역임했다. 또 1965년 한국 최초로 Wood Badge Course 개설 준비 책임자로 일했으며 1968년 세계스카우트연맹 주최 교수훈련 수강 및 교재강사, 1969년 제1회 한국 연장대 야영대회 기획조정부장, 1972년 제4회 한국 잼버리 야영부장 등을 역임한 후 1978년 미국으로 이주했다.

미국 이주 후에도 스카우트는 고 임 대장의 자부심이었다. 그는 2012년 8월 강원도 고성 세계잼버리수련장에서 개최된 제 13회 한국잼버리대회에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참가해 자신이 소장하고 있던 스카우트 기념품을 한국스카우트연맹에 기증했다. 당시 고 임 대장은 “보이스카우트 활동을 하면서 얻은 수집품의 주인은 내가 아니다. 이 기증품의 본향은 보이스카우트다.”라고 말해 주변 사람들을 숙연하게 했다.

 

고 임 대장은 한국전쟁 중 인천에서 부산으로 이동할 때 승선했던 Victory 호가 Los Angeles 인근 San Pietro 항에 정박하고 있으며 전쟁 박물관으로 개조해 전시된다는 소식을 듣고 당시 한국스카우트연맹 정복현 치프 커미셔너에게 연락해 Victory호가 스카우트 무궁화 금장을 받을 수 있도록 기여했다. 2013년 7월 13일이었다. 사람이 아닌 선박에게 무궁화 금장이 수여된 것은 지금도 전무후무한 일이다.

 

고 임 대장은 생전에 스카우트 정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청소년들이 자신의 품성을 함양하여 ‘나라를 위해 충성을 다하고, 겨레를 위해서 봉사 정신으로 실천하는 것이 바로 스카우팅(Scouting)의 진정한 정신입니다. 순종하고 배려하며 어려움이 닥쳤을 때 머뭇거리지 않고 언제나 앞장서 옳음을 위해 굳게 서온 조직이 바로 한국의 스카우팅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는 후배 스카우트들에게 이런 당부도 했다.

“스카우트들 모두 과거와 현재에 머무르지 말고 새로운 아이디어로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하는 스카우트가 되길 기원한다”

 

평생을 스카우트로 살았던 고 임익선 대장의 영결식은 24일(화) 오후 12시 30분 Hollywood Hills에 있는 Forest Lawn(6300 Forest Lawn Drive, Los Angeles, CA 90068)에서 열린다.

 

문의: (819) 307-1484

1955년 창영초등학교 유년대가 선서식을 하고 있다.
2013년 7월, 빅토리아호에 스타우투 무궁화 금장을 수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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