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한가위만 같아라

2017.10.09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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빰-빠! 빰빰빰! 빰-빠라라빠빠 빰빠라~~


대한민국 육군 현역 출신의 오빠와 남편을 둔 덕분에 숱하게 들은 군대 이야기와 TV 예능 프로그램으로 짐작해 본 군대 생활이 전부라지만 이런 날은 왠지 군대에서 울릴 법한 기상 나팔 소리가 내 귓가에 울려 퍼지는 것만 같다.  마치 혹한기 훈련을 받다가 천근만근 안 쑤시는 곳이 없는 몸을 이끌고 베게에 머리를 얹자마자 거짓말처럼 나팔 소리가 울리는 것처럼 그 나팔 소리가 오늘 새벽 내게도 들렸다.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새벽 5시가 좀 지난 시간이었다. 


차례를 지내기 위해서 오산 시작은아버님댁에 가려면 아침 7시 30분쯤 집에서 나서야 하니 6시 정도에 일어나 먼저 준비를 마치고 애들을 깨우고 남편을 깨우고 어제 찾다가 실패한 둘째, 넷째 한복도 다시 찾아 보고 약주 좋아하시는 시 작은아버님 선물도 확인하고……


그렇다. 오늘은 대한민국 며느리들의 파란만장한 10일간의 대역사 휴먼 다큐드라마가 시작되는 추석 새벽이다. 그리고, 나도 며느리다. 


예상보다 눈이 빨리 떠져서 잘 시간이 줄어든 것은 아쉽지만 다시 눈을 붙이면 영원히 붙어버릴 것 같아 눈을 살며시 뜨고 폰을 들어 새벽 빛에 빛을 더해 본다. 이리저리 뒤척이니 남편도 부스럭거리며 일어난다. 남편에게 서둘러야 한다고 말하고는 침대에서 우사인볼트처럼 튀어나가 머릿속에 짜여진 동선 대로 움직인다. 군더더기 하나 없는 날렵한(?) 동작으로 일단 내 준비부터 깔끔하게 마친 후 아이들을 깨우고 어제 다 못 찾은 아이들 한복을(아직도 귀국 이삿짐 정리 중)찾아 본다. 참 신기하게도 필요 없을 때는 정말 처치 곤란처럼 늘 튀어나오던 한복도 오늘은 보이지 않는다. 장손의 아내로서 집안의 첫 며느리로서 아이들이 처음 맞는 고국의 진정한 추석을 오롯이 맞이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싶은 마음에 몸도 마음도 바쁘다.


부랴부랴 준비해도 7시반 약속 시간은 지키지 못하고 10분이 지연된 채 시아버님을 픽업하고 고속도로에 들어선다. 우리 마음을 알 턱이 없는 고속도로는 10월 3일부터 5일까지 전국 고속도로 무료라는 정부의 정책 덕분에 속절없이 막힌다. 다들 해외로 나갔다고 하던데 느낌은 모두 다 경부고속도로에 모인 것만 같다. 


오산 작은댁 입성.

치~~~치이~~~~ 치치칫~~~~!

응답!

(기름이 튀는 듯한 총성이 아득히 들린다.)

치~~~~ 치이~~~~ 칫!

응답하라! 오바~!

명절을 지내는 이 땅의 며느리들이여~! 살아있는 이들이 있다면 응답하라~~~!

(아득히 저 멀리서 들리는 소리.) “기름이 떨어졌다. 기름이 떨어졌다.”

(잔잔하지만 근엄하고 장엄하며 당당하고 굳건한 음악이 흐르며)

전우여, 오늘 전우가 보여준 생선전, 호박전, 산적에서 보여준 용맹스러운 뒤집기는 우리 부대에도 전해져 부대 군기 향상에 큰 귀감이 되었다네. 가족과 나라를 위해 참고 희생한 그대들의 노고는 길이 기억될 것이오. 힘을 내시오. 


라고… 잠시 머릿속으로 그려본다. 며칠 전부터 설렘 반, 걱정 반, 두근두근 기다려온 추석이었지만 정작 나는 아직 음식 그릇 나르기, 삐뚤빼뚤 서툴게 과일 깍기 정도밖에 못하는 미쿡 며느리인 것이다. 


시작은아버님댁에 도착하니 벌써 알록달록 색색의 차례 음식이 정갈하게 제기 그릇에 얌전히 담겨 있다. 불과 몇 해 전까지 우리 시어머님께서 평생 하시던 일인데 가족들이 상의하여 재작년부터 작은집에서 제사와 차례를 지내고 있다. 밥도둑 영광굴비, 날름날름 손으로 집어 먹을 때 제일 맛있는 동태전과 고소한 냄새가 진동하는 각종 전들, 고기 국물이 진하게 우러난 토란국, 맛있게 제대로 익은 각종 김치들, 빠지면 섭섭한 송편과 전통 한과들, 아이들도 좋아하는 달콤 시원한 식혜와 각종 과일들. 고생해서 준비한 이의 정성과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음식들을 보니 한가위가 괜히 한가위는 아니구나 싶다. 


“자 차례 지내자.” 라는 시아버님의 말씀과 함께 시작은아버님이 향을 지피시니 아직도 기저귀를 졸업하지 못한 우리집 막내가 해맑은 얼굴로 소리를 지르기 시작한다. 


“해피 버스데이 투유~~ 해피 버스데이 투유~~”


아이들을 비롯한 온 식구가 빵 터졌고 우리들의 배도 우리들의 추석도 풍성하게 빵 터지는 하루였다. 더도 덜도 말고 늘 한가위만 같아라. 




* 한국에서 중학교 1학년을 마치고 미국으로 건너와 26년 동안 생활해 오던 ‘나는야 1.5세 아줌마’의 필자가 8월부터 한국 생활을 시작했다. 필자의 한국 생활 이야기도 기대가 된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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