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몽

2017.10.23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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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인물들 중에는 장래에 비범한 인물이 될 조짐을 보이는 어마어마한 태몽을 가지고 태어난

경우가 많다. 신라 김유신의 경우 그의 아버지가 하늘에서 형혹성 두 개가 떨어져 자기에게 오는 것을 받은 꿈을 꾸었다고 하고, 유신의 어머니는 한 동자가 금빛 갑옷을 입고 구름을 타고 하늘에서 내려와 집안으로 들어오는 특별하고 신비한 꿈을 꾸었다고 한다.


꿈으로 잉태 여부, 태아의 성별, 장래의 운명 등을 풀이하는 것을 태몽점이라 하는데 태몽은 반드시

임산부 본인이 꾸지 않고 태아의 아버지나 조부모, 가까운 친구나 친척이 꿀 때도 있다고 하니 어쩌면 그저 태몽은 자기가 꾼 꿈을 태몽이라 믿는 이에게 전적으로 달려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굳이 역사적인 인물이 아니더라도 일반적인 꿈과 다르다는 태몽은 여기저기서 들어본 기억이 있다.

뽀얗고 먹음직스러운 커다란 복숭아를 품에 안는 꿈, 내 몸을 칭칭감는 흰 구렁이, 여의주를 물고 하늘로 솟구치는 용, 바다에서 따온 전복, 맑은 물가에서 날아 오르는 새, 집안으로 걸어들어오는 황소, 하늘처럼 푸른 고래, 힘차게 펄떡거리던 내 품의 잉어, 영롱하게 날 쳐다보던 호랑이 등등.


신기하게도 유독 뚜렷하고 선명하게 기억된다는 태몽이지만 임산부라면 한번쯤 꼭 꿔보고 싶은 태

몽이 나에게는 애석하게도 없었다. 나는 친구들 중 처음으로 임신을 했는데 내가 임신 할 무렵 주위에서 나 대신 우리 아이 태몽을 꿨다며 참 다양한 꿈 이야기를 해주었다. 눈썹이 길고 눈이 예쁜 분홍돼지가 꿈에 나왔다며 딸일 것 같다는 친구도 있었고 크고 눈부신 다이아몬드를 줍는 꿈을 꾸었다는 친척도, 본인이 고래와 싸우는 꿈을 꿨다는 친구도 (근데 이게 왜 우리 태몽?) 아주 푸른 해변이 나오는 꿈이 너무도 생생했다는 사람도 있었다.


이런 이야기들을 들으며 나도 그럴듯하게 생생한 태몽 하나 갖고 싶다는 생각도 슬쩍 들었지만 정작별다른 꿈을 꾸지 못했다. 훗날 아이가 묻기라도하면“너의 태몽이 이렇게 거창하니 너는 큰 인물이될 것이다.”라고 이야기해 줘야만 할 것 같아서 스토리 하나 창작해볼까까지 고민할 무렵 남편이 때마침 대신 태몽을 꾸어주었다.


첫째는 정글 숲에 살 것만 같은 눈이 크고 선명한 큰부리새가 남편을 뚫어지게 쳐다봤다고 하는데

굳이 태몽과 연관을 지어보자면 그래서인지 큰 아이 눈이 유독 짙고 선명하다. 둘째는 포대화상이나금복주 로고에 나오는 복스럽고 뚱뚱한 중이 금에 둘러싸여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복스럽게 활짝 웃고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딸은 “금동이”라는 태명을 얻게 되고 보통 출산 이후에는 태명을 잘 부르지 않는데 입에 착착 감기는 정다운 태명이 마음에 들어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 늘 딸 아이를 “금동이”라고 불렀었다. 셋째는 캘리포니아의 상징 오렌지. 먹음직스럽고 매끄럽게 빛나던 오렌지가 너무 선명했다고 하는데 지금도 이아이는 새콤달콤한 오렌지를 사남매 중 가장 좋아한다. 그런데 나름 셋째까지는 태몽도 공유하고 기록도 남겨두었는데 이 일을 어쩐담, 넷째는 아예 기억이 없다. 그나마 대신 꿈을 꿔주던 남편도 기억이 없다고하고 첫째 때는 너도나도 내 대신 태몽을 꾸었다고 하더니 넷째쯤 되니 주위도 잠잠하다. 어쩌면 그럴 듯한 태몽 하나 만들어야하는 일이 실제로 생길지도 모르겠다.


태몽 이야기를 하다가 불현듯 영화 “빅피쉬”가 떠오른다. 허풍쟁이 아버지의 얼토당토않던 무용담들이 거짓인 줄 알았던 아들. 아버지는 늘“내가 왕년에 17대1”같은 허풍을 늘어놓았고, 커가며 믿지 않게 되는 신화와 동화들처럼 아들은 아버지의 전설같은 경험담들을 싫어하게 된다. 그러다가 마주한 아버지의 진실, 동화스러움을 벗겨낸 뉴스처럼 사실만 응축된 아버지의 삶은 너무도 처절하고 불행했다. 동화처럼 그려졌기에 아름다웠고 거짓 같았던 아버지의 삶은 동화적으로 서술된 긍정의 상징이었던 것이다.


태몽도 비슷한 것은 아닐까? 매일매일 꾸는 꿈 중에 오직 하나가 특별할 수 있는 건 내 품 안에 안겨

있는 동화보다 더 동화같은 내 아이 덕분임을, 태몽의 의미가 무엇이든 미신이냐 아니냐, 얼마나 사

실이냐 거짓이냐를 떠나 특별한 내 아이의 삶을 조금 더 특별하고 재미있게 꾸며줄 감초쯤 되어주지않을까 생각해 본다. 나 역시 여러 가지 이유로 미신은 믿지 않지만 특별한 꿈 이야기만큼은 왠지 특별하게 남겨 두어도 좋을 것 같다.




* 한국에서 중학교 1학년을 마치고 미국으로 건너와 26년 동안 생활

해 오던 ‘나는야 1.5세 아줌마’의 필자가 8월부터 한국 생활을 시작하

며 1.5세 아줌마의 눈에 비친 흥미진진한 한국생활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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