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잇값

2018.01.02 11:47

타운뉴스 조회 수: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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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는 누구나 나이를 먹으면 어른이 된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내가 나이에 이르고보니 어른이 되어 나잇값을 하는 것이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아무리 공을 들여도 외모로 드러나는 세월의 흔적은 막을 길이 없지만 지혜나 덕망은 자동적으로 쌓이는 것이 아니었다.  나이 많다고 어른이 되는 것이 아니고 어른답게 행동할 어른이 된다.

 

한국은 여러 면에서 나이가 몹시 중요한 기준으로 작용한다물론 미국에서도 나이를 완전히 잊고 수는 없었지만 미국 이웃이나 미국 친구들은 특별한 계기가 아니면 굳이 먼저 나이를 묻는 일이 없어서 실제로 한참 동안 서로의 나이를 모르다가 우연히 알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직장 상사가 나보다 훨씬 어린 경우도 비일비재하고 나이를 막론하고 친구가 되는 일도 흔한 일이었다.

 

그런데 한국은 일단 사람을 만나면 신상 파악부터 하려 들고 나이에 따라 많은 것이 크게 달라진다. 그러다보니  많은 사람들이 이상하게  나이로 유세를 하려고한다. 자기보다 어리다고 생각되면 은근슬쩍 말을 놓으며 아랫사람 취급하고 어른 대접을 강요한다. 공중도덕을 무시한 천연덕스럽게 새치기하기도 하고 시도때도없이 양보를 강요하는 일도 있다. “너보다 나이 많은 말이 맞다!” 논리로 대화를 불편하게 만들고 나보다 어린 네가 아느냐?” 식의 깔봄을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어느덧 나는 나에게는 쌀쌀맞고 무뚝뚝했던 식당 종업원들이  나이 지긋한 아저씨들에게는 방실방실 기분좋게 웃으며 고기를 구워주는 수많은 경험들이 그저 우연이 아님을 확신하게 되었다. 공공기관 직원, 택시 기사, 아파트 경비 아저씨, 병원 의사들도 마찬가지다. 앞에서는 갑처럼 굴던 많은 사람들이 시아버지 앞에서 고개를 숙이는 모습을 차례 목격한 후부터 한국에서는 나이도 벼슬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물론 일부 어른들의 단편적인 모습들만으로 어른을 폄하하는 것은 옳지않다. 수많은 어른들이 가족을 지키고 나라를 번영시키기 위해 한평생을 바쳤고 그것만으로도 존경 받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나이는 감탄할 만한 지식이나 재산, 업적이 아닌 삶의 지혜에서 빛을 발할 가장 눈부시다. 도대체 솟아날 구멍이 보이지 않아 안절부절 못할 부모님과 상의하다 보면 의외로 간단히 새로운 길을 제시해주실 때가 그러하다.  나이 많은 언니들이 조용히 이야기를 들어주고 잘하고 있다며 어깨를 토닥여 때가 그러하다. 나잇값으로 대접받기보다는 나잇값으로 베푸는데 앞장서는 어른들이 그러하다.

 

새해가 밝았다
싫든 좋든 살이 늘었다. 지난 1월에 했던 결심은 가물가물 기억조차 나지 않지만 달력을 펴는 마음은 지난해보다 무거워졌다. 오늘 먹었다고 어제보다 나은 존재가 자신은 없다. 다만 삶을 겸손히 되돌아보며 하루 하루 최선을 다해 나잇값을 하며 살아가길 희망한다.  2018 새해에는 나이만큼 이해와 지혜로 빛을 발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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