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마누라가 젊어졌네!”

by 타운뉴스 posted Jun 26,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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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길에 아버지에게 들렸다. 아버지는 일어서서 바지에 혁대를 차고 계셨다. 낮이고 밤이고 늘 누워서 생활하는 아버지가 서 있는 것을 너무 오랜만에 본지라 무심코 어디 가실 거냐고 물었다. 아버지는 학교에 간다고 하면서 학교에 까지 데려다 달라고 했다. 학교가 어디에 있냐고 물으니‘돌포 온암리’에 있다고 했다. 학교는 아버지가 다니던 충청남도 청양군 남양면 온암리에 있는 소(초등)학교를 가리키는 것이리라. 아버지가 살던 매곡리는 워낙 작은 마을이라 학교가 없었다. 아버지는 온암리까지 걸어서 통학을 했다‘. 돌포’는 시골에서 부르는 동네 이름이다. 매곡리는‘매기’라고 불렀다.



“어제 선생님이 오셔서 학교에 오라고 하면서 서류를 만들어 주고 가셨어. 어서 학교에 좀 데려다 주렴.” 아버지는 학교에 가던 첫날을 기억하시는 것 같았다. 당시 농촌에서는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아 선생님들이 직접 가가호호 방문하며 학교에 보낼 것을 권고하고 다녔던 모양이다.



아버지를 모시고 집에라도 갔다 올까. 아니면 근처 공원에 가서 앉았다 올까. 잠시 망설였다. 그러나 자칫하다가 아버지에게 더 큰 실망을 안겨 줄 수도 있다는데 생각이 미쳤다“. 아버지, 오늘 일요일에요.”그 한 마디에 아버지는 몹시 안타까워하면서 침대에 누웠다. 그리고 몇 번이고 되뇌었다“. 일요일인 줄도 모르고......”



아버지는 80여 년 전의 과거에 머물러 있었다. 아버지에게는 과거가 곧 현재였다. 물리적인 시간의 현재와 미래는 없었다. 오직 과거만이 아버지를 지배하고 아버지가 살고 있는 의미인 것 같았다.



전화기 속에 저장되어 있는 과거의 사진들을 보여주며 아버지에게 물었다. 이 사람이 누구예요? 이 때가 기억 나세요? 사진을 들여다보면서 아버지는 생기를 띠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과거를 잘 아는 나로서는 아버지가 생각하는 그 시대가 어렵고 힘들고 암담했기에 잊으려 하지 않았을까 생각했지만 아버지는 그때를 뚜렷이 기억하고 또 그 기억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었다. 사진 한 장, 한 장 속에 등장하는 인물과 그 때 무슨 일이 있었던가를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아버지에게 과거는 현재를 지탱하는 힘이자 위안이었다.



2015년 유엔은 인간의 평균수명이 길어진 현실을 반영해 새로운 생애주기에 따른 연령지표를 발표했다. 0세부터 17세까지는 미성년, 18~65세는 청년, 66~79세는 중년, 80~99세는 노년, 100세 이상은 장수세대로 구분했다. 이 기준에 의하면 아버지는 노년에 해당한다.



예전에는 환갑잔치를 하지 않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 그러나 요즈음 환갑잔치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 심지어 85세에 운명해도‘호상’이라고 말하기를 주저한다. 이제는 나이에 0.7을 곱해야 30년 전의 나이에 해당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51세면 30년 전의 36세, 60세면 42세, 70세면 49세라는 얘기다. 맞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100세의 삶’의 저자 앤드류 스캇은 말했다“. 왜 우리의 삶에서 힘없는 노년기가 길어졌다고 생각하는가? 사실은 젊은 시절이 더 길어진 것인데.”‘인생의 새 지도’의 저자인 영국학자 피터 래슬릿은 노년기를‘삶의 진정한 의미를 누리고 정체성을 확보하며 개인적인 성취를 거두는 단계’라며‘제3의 나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아버지를 보면서 이 모든 지표나 말들은 노년의 삶을 살아가야 하는 이들에게 크게 위로가 되진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구나 의식이 명확한 이들에게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아버지처럼 과거 속에 사는 이들에게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하지만 분명한 것은 지금 가슴 벅찬 미래를 설계하고 있는 젊은이들이나, 현재의 자리에서 더 나은 미래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중년의 사람들이나, 누구에게나 오늘의 시간은 결국 과거가 될 것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과거의 시간에 겪었던 치열한 삶의 조각들은 미래의 어느 날, 회한보다는 위안으로 찾아올 것이라는 사실이다. 우리가 현재를 더욱 열심히 그리고 즐겁게 살아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더 많은 아버지의 과거를 전화기 속으로 옮긴다. 혹시라도 아버지에게 지워진 과거가 있을까 염려 하면서. 아버지는 전화기 속에 담긴 당신의 과거를 들여다보며 나를 소년으로 혹은 청년으로 만들어 줄 것이다. 또 젊은 시절의 어머니를 바라보며 환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어? 마누라가 젊어졌네!


안창해.png


창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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