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타운뉴스 posted Aug 07,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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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히말라야에서 끊임없이 이어지는 산길을 걸었다. 꼭두새벽에 일어나서 밤늦게까지 하루 종일 걷는일을 여러 날 반복하다보니 일정의 후반부로 가면서 싫증이 나기도 했다. 그리고 히말라야에서 돌아온 뒤로 산을 찾지 않았다. 7월에 접어들면서 영원히 산을 멀리 하게 되지나 않을까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마침 그때, 2015년 6월에 발생한 대형 산불로 그 동안 출입이 통제되었던 South Fork Trail이 일반에게 공개된다는 소식을 들었다. 산을 찾기로 마음먹었다. 가슴속에서는 두방망이질이 시작되었다.



워터라인 트레일로 올라 South Fork Trail과 만나는 곳까지 걷기로 했다. 워터라인 트레일은 80년대에 있었던 대홍수로 산사태가 나서 지형이 크게 바뀌었으며, 군데 군데 위험한 곳들이 있어 일반인들의 입산을 허용하지 않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풀이 나고 나무가 자라면서 거의 복구가 되어가는 시점에서 2년 전 산불로 모두 다 타버렸다. 언제 다시 일반인에게 공개될지 기약조차하기 힘들게 됐다.



두 갈래 길이 나타났다. 경사가 심하지만 목적지까지 빨리 갈 수 있는 길, 평탄한 길이지만 돌아가야 하는 길, 언제나 어느 길로 갈까 망설이지 않았다. 그때그때 기분이 내키는 대로 걸었다. 오늘은 평탄한 길로 접어들었다.



얼마 가지 않아 길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풀들이 무성하게 자라 길을 덮어 버린 까닭이다. 앞서 간 이가 밟고 간 흔적을 겨우 찾아 그 위에 또 하나의 발자국을 남기며 걸었다. 앞선 이의 발자국에 또 다른 발자국이 더해지면 언젠가는 결국 길이 될 것이다.



얼마나 그렇게 걸었을까. 앞서간 이의 흔적이 보이질 않는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누군가 허둥지둥 허리춤까지 자란 수풀 속에서 빠져 나간 흔적이 있었다. 나도 그사람이 했던 것처럼 발을 높이 들어 그곳에서 허겁지겁 빠져 나온다. 하지만 더 이상 흔적을 찾을 수 없다. 계속 가야 할 것인지 아니면 돌아가야 할 것인지 잠시 망설인다.



5년 동안 주말마다 찾았기에 수십 번도 더 오른 길이다. 지형지물을 가만히 살펴본다. 기억 속에 있는 나무들이 보인다. 눈앞에 보이는 두 그루의 침엽수 사이로 길이 있었다. 언젠가 낯선 길로 들어섰다가 길이 없는 산등성이를 넘어 내려와 만났던 곳이다. 길옆으로는 맑은 물이 흐른다. 산불이 나기 전에는 파란 하늘이 내려 앉은 계곡물 속에서 물고기들이 한가롭게 유영을 즐기
고 있었다. 그곳 언저리에서 요기를 하며 쉬어가곤 했다.



길을 따라 조금 더 오르니 이번에는 고사리 밭이다. 고사리가 허리춤까지 올라온다. 또 다시 길을 잘 못 든것이다. 어디로 어떻게 갈 것인가 궁리를 한다. 하지만 방향을 분명히 알고 있으니 그리 큰 문제는 없다. 오던 길을 되돌아 나와 산등성이쪽으로 올라서니 옛길의 흔적이 희미하게 보인다. 부지런히 발걸음을 움직인다. 얼마 지나지 않아 길이 나타났다. 아주 걷기 좋은 평탄한 길이다. 이 길이 계속되기를 바라며 걷는다. 산의 형세로 보아 예상한 길에서 사뭇 벗어나 있다. 다니던 길이 아니다. 물길 따라 오다보니 골짜기 깊숙이 내려와 있다. 이제 산등성이를 타고 비스듬히 걸어 본래 길을 찾아야 한다.



앞서간 사람이 남긴 흔적을 따라가면 쉽다. 혹시 또 있을지도 모를 길 잃은 사람을 위해 꾹꾹 눌러가며 발자국을 남겨 놓는다. 이 트레일을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걷다보니 한 번도 지나 간 적이 없는, 길 아닌 길을 연속해 걷고 있다.



잠시 쉬었다 가기로 한다. 사방이 검게 그을은 나무들이다. 검은 숲은 이름 모를 새들과 풀벌레 소리, 물흐르는 소리를 빼면 고요함뿐이었다. 그 고요함에 날파리, 벌, 나비, 그리고 따다닥 소리를 내며 다니는 메뚜기들이 파동을 일으키며 그들이 숲의 주인임을 알리고 있었다.



다시 걸음을 재촉한다. 이젠 손바닥 들여다보듯이 잘아는 길이다. 물길을 건너야 한다. 무작정 물길을 따라 내려갔다가는 경사가 심한 비탈길을 올라가야 한다. 하지만 물길을 건널 다리가 없었다. 돌을 던져 징검다리를 만들어 보려 했지만 돌은 아무리 던져도 물살에 쓸려가거나 물 깊은 곳으로 잠길 뿐, 딛고 건널 다리는 만들어지지 않았다. 신과 양말을 벗었다. 발이 시리고 물
살도 거셌다. 지팡이로 물속을 찍어 가며 물살에 휩쓸리지 않게 조심하며 물을 건넜다. 다시 평탄한 길로 접어들었다. 햇살이 따갑다.



길은 저절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이다. 앞서 간 사람이 걸었던 길을 따라 걷기도 하고, 미지의 공간에 내가 먼저 발자국을 남기기도 한다. 그렇게 길은 만들어진다. 힘들고 지치면 쉬었다 간다. 쉰다음에는 또 다시 걸어야 한다. 간혹 내가 가려고 하는 목적지로 이어진 길인지 아닌지 알지 못해 혼돈스럽고 걱정이 되기도 한다. 길을 잃고 숲속을 헤매기도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걷다보면 길을 만나게 된다. 그래서 길은 인생의 또 다른 이름이다.



안창해.png



창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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