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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방구
04/23/18  

첫째, 둘째, 셋째가 방안에서 뭔가 쑥덕거린다. 무슨 일인가 싶어서 조용히 다가가 반쯤 닫혀 있던 문을 쓰윽 열었더니 아이들이 조금 당황하는 눈치다. 손에는 얼마 안 되는 지폐가 쥐어져 있다. 굳이 묻지 않아도 대충 사태 파악 완료.  엄마 모르게 돈을 챙겨 태권도 가는 길에 문방구에 들릴 꿍꿍이었다.

 
한국에 오니 문방구라는 곳은 우리 아이들에게 신세계나 다름이 없다. 미국에서 보호자 없이는 동네 마켓에서 껌 한 통도 살 수 없던 아이들이 자기네들끼리 걸어서 만물상같은 문방구에 갈 수 있으니 얼마나 흥분이 될지 대충 상상이 간다. 그래도 지금은 아이들을 위한 공간과 재미거리들이 널려 있지만 내가 어린 시절에는 문방구가 유일한 그런 장소였다.

 
지금도 문방구의 추억은 어린 시절의 기억 속에서 빼놓을 수 없는, 그야말로 나의 유년시절의 기억을 지배하는 특별한 공간으로 남아 있다. 학교수업에 필요한 용품들을 사기 위해 수도없이 드나들기도 했지만 하교길에 들려 쭈쭈바를 사 먹거나 군것질거리로 출출함을 채우며 장난감을 구경하던 곳이었기 때문이다. ‘문방구 앞 뽑기로 어느 누가 대왕잉어 엿을 성공했다더라’ 하는 소문은 뽑기 도전 의지에 불을 지폈고, 문방구에 신상품이 입고됐다는 소식은 그 당시 우리에게 꽤나 큰 이슈였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특별한 목적도 없이 문방구 앞으로 직행하는 것은 우리들의 일과였다. 슈퍼에서는 잘 팔지 않는 애매한 브랜드의 불량식품을 하나씩 입에 물고 그 작은 공간에 쪼그려 앉아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오락, 뽑기, 새로 나온 딱지와 구슬, 보드게임과 완구들을 구경했다. 매일 뭘 사지도 않으면서 그렇게 열심히 구경을 해댔으니 문방구에 있는 제품들을 대충 외울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러다가 명절에 세뱃돈으로 목돈이 생기면 오빠랑 꼭 문방구로 달려가 평소 눈 여겨 둔 사고 싶은 것들을 자신 있게 집어 들었다. 종이인형, 색칠공부, 예쁜 메모지와 편지지, 지우개와 연필 등을 잔뜩 고르고도 기껏해야 5천 원, 그렇게 한참을 쇼핑하고 나면 정말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었다. 보물처럼 애지중지 고이 간직한 그 당시 재산들은 수차례 이삿짐을 싸고 풀면서도 버리지 않고 이날 이때까지 보관하고 있다.


지금은 왠만한 것은 모두 온라인으로 구매가 가능하고 대형마트마다 따로 문구용품을 파는 코너가 있고 다이소와 같이 저렴한 문구류를 파는 업체도 생겼지만 우리가 어렸을 때 문방구는 없어서는 안 되는 곳이었다. 그 시절 문방구는 우리의 재미와 호기심을 해소해 주는 꿈이 영그는 아이들의 참새 방앗간이었다. 그야말로 학교 앞 문방구는 우리에게 문구점이고, 장난감 가게이고, 서점이며 분식점이었다. 그런데 아련한 추억의 장소 문방구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

 
내가 학교에 다닐 때는 학교 정문, 후문 앞에 각 몇 개씩, 또 아파트 앞에 몇 개씩 있던 문방구가 이제는 고작 한두 개 남아있을 뿐이다. 문방구의 불황은 대형마트와 전문 문구점, 온라인 쇼핑몰의 등장으로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 저출산과 아이들의 놀이, 교육 환경의 변화도 한몫 했다. 우리 때는 문방구가 최고의 놀이터이고 문화 공간이었지만 요즘 아이들은 TV나 컴퓨터, 스마트폰에 더 익숙하고 학교를 마치면 쉴 틈도 없이 학원 버스에 오르기 바쁘다.


문방구. 90년대만해도 이 단어로부터 향수를 느끼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에 다니는 우리 아이들 덕분에 나는 지금도 하루가 멀다 하고 모교 앞을 지난다. 세월이 꽤 많이 흐르긴 했지만 그때 그 시절 그 많던 문방구들이 모두 사라졌다는 사실에 추억을 도둑 맞은 듯한 기분이 들어 안타깝다. 학교 앞 문방구는 머지않아 가슴 속 추억으로만 남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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