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야 1.5세 아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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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로를 거닐며
04/23/18  |  조회:126  

어릴 적 친구들과 함께 공연을 보러 혜화역 근처 대학로를 찾았다. 한 친구가 5월 말에 뉴질랜드로 이민을 가기 때문에 다른 친구가 부산에서 상경을 했는데 몇 달 전부터 벼르고 벼르다가 어렵게 성사된 만남이었다. 어릴 때 친구들은 오랜 공백 후에 만나도 격식과 경계심 없이 마주할 수 있어서 마음이 편안하다. 서로의 어린 날들을 기억해 주는 이들이라 보물처럼 소중하고 또 언제나 그리운 사람들이기도 하다.


어젯밤 뉴스 일기예보에 오늘 오후에는 미세먼지도 없고 포근하다더니 정말 날씨 한번 화창했다.  
대학로라는 이름에 걸맞게 젊은이들이 북적이는 거리는 활기찼다. 카페, 식당과 공연장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건널목마다 젊은 청춘들의 재잘거림과 함박웃음이 싱그러운 봄 하늘을 가득 채웠다. 젊음과 봄의 푸르름이 대학로를 훨씬 더 생기 있고 활기가 넘치게 만들고 있었다. 아가씨들의 맨살이 들어나는 옷차림과 짧아진 하의가 아직 내 눈에는 추워보이지만 그만한 나이 때의 발랄함이 보기 좋았다. “쯧쯔, 너 그렇게 멋내다가 얼어죽는다.”는 부모님의 혀 차는 소리를 뒤로 하고 멋 내느라 추운 줄도 몰랐던 시절이 당연히 나에게도 있었다.

 

친구들과 나란히 걸으며 어느새 그들의 젊음을 부러워하는 대화가 시작되었다.
“어릴 땐 몰랐는데 지금 보니 저 나이 땐 정말 화장을 안 해도 참 예뻐.” 
“여드름난 피부나 살찐 몸매도 젊음이 다 커버해준다니깐. ”
“그러니깐. 그땐 정말 몰랐는데 이제는 그게 뭔지 이해가 간다.”

젊음 그 자체로 예쁘다는 것이 무엇인지 눈에 보이기 시작하니 이제는 제법 내가 나이가 들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보니 이제는 어딜 가든 나보다 젊은 사람들을 쉽게 만나게 된다. 어느새 군인, 경찰, 공무원, 식당 종업원, 버스기사, 심지어 뉴스에 이름이 오르는 범죄자들마저 나보다 나이가 어린 경우가 부쩍 많아진 것이다. 나에게 깍듯한 경어를 쓰거나 대화 중 세대 차이로 어색한 기류가 느껴지는 경우도 종종 경험한다. 또TV에 나오는 꽃미남의 젊은 청년들이 이성으로 보이기 보다는  ‘우리 아들도 저렇게 준수한 외모로 성장하면 좋겠다’는 생각부터 든다. 그들이 나보다 최소 열 살 이상 어린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이제 정말 내가 빼도박도 못하는 중년 아줌마라는 사실을 인정하게 된다.


웃을 때마다 짙어지는 팔자주름과 계단을 오를 때마다 새어 나오는 얕은 신음을 감출 수 없는 나이가 되었지만 그래도 친구들과 함께 하는 순간만큼은 다시 어린 시절로 돌아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아직 꽃샘추위가 가시지 않아 춥다며 서로 옷깃을 여미기 바쁘지만 마음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 포근하고 싱그러웠다. 함께 나이 먹으며 추억을 나눌 수 있는 친구들이 곁에 있어서 걷는 내내 발걸음이 가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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