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집 찾아 삼만리
08/24/20  

믿거나 말거나 나는 어릴 때 분명 먹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아이였다. 식탁에는 늘 내가 좋아하지 않는 갖은양념 (파, 마늘, 양파)으로 만든 반찬들과 뜨겁고 매운 음식들이 올라왔기 때문에 식사 시간은 어떤 면에서는 내게 곤욕스러운 시간이기까지 했다. 나는 늘 골고루 잘 먹는 오빠와 비교되어야만 했고 그렇게 끼니때마다 엄마의 잔소리와 함께 눈물 젖은 밥을 넘겼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런데 십 대 무렵 어쩌다가 목구멍으로 넘어간 파와 양파가 달큼해지기 시작하며 나는 슬슬 "먹는 낙"을 알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새 ‘맛있는 음식을 두루 맛보는 것이 꽤나 큰 행복이구나’를 느끼는 순간이 늘어가고 있다.

 

명품 옷이나 가방에 욕심부려본 적 없고 딱히 나를 위해 큰돈을 쓰는 일도 없는 편이지만 이따금씩 남편과 함께 돈 걱정 안 하고 맛있게 한 끼 하는 것이 나의 유일한 사치이자 우리 부부의 취미 생활이다. 미국에서는 즐겨 사용하는 식당 검색 앱이 있었지만 한국에서는 지난 몇 년간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맛집을 찾아가고 있다. 초반에는 맛집만 전문적으로 검색해주는 몇 가지 앱들을 이용해봤지만 이용자나 리뷰가 충분하지 않아 데이터가 부족하다는 느낌이 강했다. 결국 한국 대표 포털 사이트인 네이버 검색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고 그때마다 펼쳐지는 수많은 맛집 블로그들은 마치 신세계와도 같았다.  맛집 블로그도 처음에는 참 믿음직스럽고 또 편리했다. 수천, 수만 명의 이웃을 보유하고 조회수도 엄청난 블로거가 질 좋은 사진도 알아서 수십 장 올려주고 조목조목 꼼꼼히 따져서 리뷰해주니 참 좋구나 싶었다.

 

그런데 00동 맛집, 내 주변 맛집 등을 검색한 후 상위 검색된 수백 개의 리뷰만 믿고 찾아간 식당에서 실망스러운 경험을 수차례 하고 나자 뉴스도 가짜 뉴스와 진짜 뉴스가 있듯이 맛집 리뷰에도 가짜와 진짜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한 번은 여행 중에 천 개 넘는 블로그 리뷰를 자랑하는 게장 맛집을 일부러 찾아간 적이 있었다. 식당 안에는 우리 같은 관광객만 드글거렸는데 분명 우리처럼 맛집 후기에 낚인 게 틀림없었다. 대표 메뉴인 게장 양념은 너무 자극적이기만 하고 쥐꼬리만 한 게 살을 파내는 작업은 너무 고되고 파리는 또 왜 그리 많이 날아다니는지 막내 얼굴에 파리 대여섯 마리가 떠나질 않아 마침내 아이가 울음을 터트려 정말 먹는 둥 마는 둥하며 식당을 나서야 했다. 일정 금액을 내면 게장 무한 리필이 가능한 집이었는데 우리는 처음 서빙된 음식조차 끝내지 못한 것이다.

 

이런 식으로 후기만 믿고 갔다가 ‘아...... 여긴 가성비만 좋은 식당이구나...’ 하는 뼈아픈 경험을 한두 번 한 것이 아니었다. 수백 개의 리뷰만 믿고 먼길 찾아가고 대기까지 했지만 맛은 둘째치고 위생 상태나 서비스부터 엉망인 정말 기본도 지켜지지 않는 식당도 너무 많이 봤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맛집 리뷰를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네이버에 검색하면 나오는 맛집 리뷰의 절반 이상은 대가를 받고 쓰인 광고라는 것을 단언할 수 있다. 왜냐하면 내가 직접 경험했기 때문이다.

 

나도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는데 맛집 리뷰 글도 곧잘 올린다. 처음에는 다른 게시글보다 조회수가 높길래 재미 삼아 계속 올렸는데 방문객이 확 늘어나니 광고 대행사 같은 데서 내 블로그를 구매하거나 대여하겠다고 매일같이 연락을 해온다. 그리고 업체에서 먼저 연락해서 무료 식사를 제공할 테니 리뷰를 남겨달라고도 한다. 아직 별로 솔깃한 제의가 없었던 건지 대가성 리뷰를 써보지는 않았지만 '무료 시식'은 공정성을 떨어뜨리기 너무 충분한 이유가 된다고 확신한다. 그래서 “이 글은 000으로부터 지원을 받은 글입니다"라고 쓰인 리뷰는 대충 걸러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만약 내가 언젠가 혹시라도 그런 대가성 글을 쓰게 된다면 내 글이 적당히 걸러지는 것에 대해서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이런 글들은 메뉴판이나 식당 사진, 음식 사진 등을 살펴보는 것으로 만족하고 내용은 객관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이건 어쩔 수가 없는 일이다.

 

어쨌든 이렇게 대가성 광고가 판을 치는 정보의 바다에서 제대로 된 맛집 리뷰를 만나는 것은 바다에서 진주를 찾는 작업과 같을지 모르나 그렇게 보석을 찾았을 때의 그 성취감과 행복은 메마르고 거친 일상에 기름칠 정도는 해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같은 식도락의 여정은 다이어트의 숙적이라는 것을 잘 알지만 가능한 한 그 밸런스를 잘 유지하며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이 요즘 나의 최대 미션이다. 최근 입맛을 잃어 도통 맛있는 게 없고 입이 쓴데도 불구하고 변함없는 몸무게를 유지하는 것을 보면 어쩌면 이것은 나의 숙명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떤 고난도 먹으며 극복해야 한다는 그 어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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