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성 없는 전쟁
08/31/20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돌입을 알리는 신호들이 도처에서 나타나고 있다.

 

1760년에서 1840년까지 철도·증기기관의 발명 이후 기계에 의한 생산을 제1차 산업혁명이라 한다면, 제2차 산업혁명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까지 전개되었던 전기와 생산 조립라인 등 대량 생산체계 구축을 가리킨다. 이어서 반도체와 메인프레임 컴퓨팅(1960년대), PC(1970~1980년대), 인터넷(1990년대)의 발달을 통한 정보 기술 시대가 제3차 산업혁명의 시대로 정의된다.

 

3차 산업혁명을 기반으로 도래한 4차 산업혁명은 ‘초연결성’, ‘초지능화의 특성을 가지고 있으며, 사물인터넷(IoT), 클라우드, 등 정보통신기술(ICT)을 통해 인간과 인간, 사물과 사물, 인간과 사물의 상호 연결과 빅데이터와 인공지능 등으로 보다 지능화된 사회로의 변화를 주도할 것으로 예측된다. 이 모든 변화를 구현해내기 위해 지금까지 사용하던 4G에서 더 나아가 5G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이 결정적이다. 바로 이 4차 산업혁명으로의 진입을 앞두고 5G 네트워크 구축의 주도권을 놓고 중국과 미국의 싸움이 치열하다.

 

전자제품과 통신장비를 제조하는 중국의 화웨이(华为, 화위)기술유한공사는 전 세계 35개 업체에 통신장비를 납품하고 있으며 낮은 가격을 무기로 기존 업체들을 추월하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결국 캐나다 통신장비 업체 노텔이 파산했으며, 2016년 1/4분기 기준 스마트폰 점유율 전 세계 3위에 오르는 등 엄청난 성장세를 보였다. 2017년부터 유럽시장에서 인기가 치솟기 시작해 2018년 7월, 처음으로 애플을 제치고 삼성전자에 이어 세계 2위 스마트폰 제조사로 부상했다.

 

화웨이가 눈부신 성장을 거듭하던 지난해 5월, 미 상무부는 미국 기술과 장비를 이용한 반도체 제품을 화웨이에게 수출할 수 없도록 금지했다. ‘화웨이가 미국인들의 개인 정보를 중국 공산당에 빼돌린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러자 화웨이는 자회사인 ‘하이실리콘’에서 독자 설계한 후 대만의 TSMC에서 위탁 생산을 시작했다.

 

화웨이의 이러한 대응에 미 정부는 올 5월부터 화웨이가 설계한 반도체라 해도 다른 나라 업체에서 생산해서 공급할 때는 반드시 미국 정부의 승인을 받도록 했다. 하지만 화웨이는 바로 대만의 반도체 설계업체인 미디어텍이 설계하고 TSMC가 위탁생산한 제품을 구매하는 방법을 택했다.

 

화웨이가 계속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자 미 상무부는 지난 8월 18일, 미국 소프트웨어나 기술로 개발 또는 생산한 외국산 칩(반도체)을 ‘화웨이가 사는 것 마저 제한하도록 규정을 개정했다. 화웨이가 설계하지 않았더라도 미국 기술이나 장비를 사용해 생산한 반도체를 화웨이에게 공급하기 위해서는 미국의 승인을 받도록 한 것이다.

 

화웨이에 가한 미국의 이러한 제재는 반도체 원천기술, 반도체 생산 장비와 소프트웨어 대부분이 미국산이라 가능했다. 미국 정부는 이런 ‘기득권’을 철저히 활용했다.

 

부품을 안정적으로 수급하지 못한다면 스마트폰 경쟁에서 화웨이가 삼성이나 애플은커녕 중국 업체인 오포나 비보 등보다도 앞설 수 없다. 여기에 5G 통신망, 서버 등에 들어가는 프로세서 역시 공급망 붕괴가 불 보듯 뻔하다. 현재 보유하고 있는 재고가 다 떨어지면 사업을 접을 수도 있다. 이번 제재는 스마트폰과 통신 장비를 생산하는 화웨이에게는 사망선고나 다름없다.

 

화웨이 제재가 중국에게만 영향을 끼치는 것은 아니다. 당장 미국 반도체 업계도 큰 타격을 받을 것이다. 왜냐하면 엔비디아, 텍사스 인스트루먼트, 퀄컴, 인텔, 브로드컴 등 5개 미국 반도체 기업 매출의 25%~50%는 중국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도 걱정이다. 화웨이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주력인 메모리(낸드플래시와 D램)분야의 주요 고객이기 때문이다. 그동안의 ‘화웨이 제재’는 비메모리(시스템) 위주로 진행됐다. 하지만 이번 제재 대상엔 메모리 반도체도 들어갈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자국 기업의 부담을 감수하면서까지 화웨이 죽이기에 나섰다. 어느 시점에서 미국은 삼성과 SK 측에 화웨이와 손을 떼라고 요구할 수 있다. 반대로 중국이 한국에게 ‘화웨이 살리기’에 동참해달라는 요구를 할 수도 있다. 단순히 한 기업의 사활이 달린 선택이라고만 여길 수 없는, 국가의 존망에도 영향을 미칠만한 중차대한 선택임에 틀림없다. 선택의 순간은 멀지 않았다.

 

지난 8월 21일 양제츠 중국 공산당 외교담당 정치국원의 방한을 예사롭지 않은 시각으로 바라 볼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이미 시진핑 방한을 조건으로 한국 정부에 화웨이 살리기 동참을 요구했을 수도 있다.

 

물리적 공간, 디지털적 공간 및 생물학적 공간의 경계가 희석되는 기술융합의 시대를 여는 4차 산업혁명이 5G 시대의 선두를 점하기 위한 미국과 중국의 총성 없는 전쟁으로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안창해. 타운뉴스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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