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09/14/20  

지난 3월 하순 보스턴에 살던 막내아들이 집으로 돌아왔다. 코로나 19 때문에 재택 근무하게 되어 굳이 따로 나가 살 필요가 없다고 했다. 대학 진학과 함께 완전히 곁을 떠난 줄 알았던 아들이 돌아왔으니 어찌 기쁘지 않을쏘냐. 그의 목소리만 들려도 좋았다. 신이 났다. 날마다 아들이 좋아하는 콩나물국, 김치찌개, 닭볶음탕, 미역국, 조기구이, 갈비구이, 불고기 등을 해주며 힘든 줄 몰랐다. 나의 요리 솜씨가 눈부시게 발전되어 갔고 아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면서 즐거웠다.

 

그런데 다섯 달을 넘어서면서부터 슬슬 ‘이게 아닌데,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아들은 온 집안을 난장판으로 만들어 버렸다. 처음에는 제 방에서 일했다. 한 주일쯤 지나서 방이 너무 어둡다고 옆방으로 옮겼다. 또 한 주일 지나서는 -두 방을 모두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놓은 후- 답답하다며 아래층 거실에 커다란 테이블을 펴놓고 온갖 것을 다 늘어놓았다. 잠도 이 방 저 방 왔다 갔다 하면서 자고 있다.

 

아들은 문을 잠그지 않고 나다녔다. 하루에 몇 번씩 운동한답시고 드나들면서 문을 잠그지 않았다. 사람이 집안에 있다면 괜찮지만 아무도 없을 때는 문을 꼭 잠그고 다니라 해도 그때뿐이었다. 아무리 얘기해도 시정되지 않기에 더 이상 문 잠그는 일에 대해서는 언급을 하지 않기로 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먹는 일에도 신경이 쓰인다. 하루 세끼를 배불리 먹고도 끼니 사이사이에는 각종 칩이나 견과류, 팝콘 등으로 주전부리도 자주한다. 그걸 탓하자는 게 아니다. 문제는 다 먹고 나서 그릇은 물론 바닥에 떨어진 부스러기조차 치우지 않는데 있다. 몇 번 잔소리 했더니 음식을 담았던 그릇을 싱크대에 갖다 놓기는 하지만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설거지를 한 적이 없다. 늘 내가 하고 있다. 여기까지도 견딜 만하다.

 

언젠가부터 집안에서 마주치게 되면 아들이 나를 툭툭 치기 시작했다. 배도 툭 치고 엉덩이도 툭 건드리고 제 친구들과 만났을 때 하는 짓을 아빠에게 하면서도 아무렇지도 않아 했다. 처음에는 아빠에게 그러지 말라고 했으나 녀석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나를 치고 다녔다. 아빠가 아니라 제 친구쯤으로 여기는 듯했지만 이 또한 받아들이기로 했다.

 

아들은 샤워를 시도 때도 없이 한다. 하루에 서너 번 이상 샤워를 한다. 대여섯 번 하는 날도 있다. 그렇다고 자주 씻는다며 뭐라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신경이 쓰이는 일은 또 있다. 아들은 낮이고 밤이고 집안의 불이란 불은 모두 켜놓고 다닌다. 환한 대낮에도 천장에 달린 전등은 물론이고 스탠드까지 켜놓고 일한다. 게다가 화상 미팅할 때 빼고는 하루 종일 음악을 커다랗게 틀어 놓고 있어 온 집안이 시끄럽다. 머리가 빙빙 돌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부모집이 그리워 찾아온 아이에게 대놓고 뭐라 하기도 힘들고, 이래저래 아들 눈치보고 사는 신세가 되었다.

 

아들과 생활하면서 수년 전 대학 진학을 위해 집을 떠날 때의 그 아들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어떤 때는 아들과 대화를 나누던 중에 나도 모르게 언성이 높아지기도 했다. 그럴 때면 아들은 나를 향해 ‘컴다운’이란 말을 반복했다. 그러다 어느 날은 왜 자기에게 옐링하냐며 아들도 언성을 높였다. 아빠라고 해서 봐줄 뜻이 없음을 분명히 하고 나선 것이다. 그날 이후로는 가능한 한 아들과의 언쟁을 의식적으로 피했다. 가능한 한 부드럽게 이야기했고 웃는 낯을 짓기 위해 노력했다. 아들도 전보다 한결 편하게 대했다.

 

7월 하순 어느 날 늘 두는 곳에 자동차 열쇠를 놓으려는데 못 보던 봉투가 보였다. 무심코 봉투를 열어보니 제법 많은 돈이 들어 있었다. 이게 무슨 돈인가 물으니 아들이 한 달 치 숙식비라며 앞으로는 매달 내겠다고 했다. 부모 자식 간에 무슨 숙식비냐고 돌려주려 하니 손사래를 쳤다. 살던 아파트 계약 기간이 만료되었기 때문에 아파트 렌트비를 더 이상 낼 필요가 없어졌다면서 그 대신 이제부터는 매달 숙식비를 내겠다고 했다.

 

‘품 안의 자식’이란 말이 있다. 어린 자식이 부모의 뜻을 따라 생활한다는 뜻이다. 그런 자식이 예쁘고 귀하지 않을 부모는 없다. 하지만 자식이 영원히 부모의 품 안에 있기를 바랄 수는 없다. 자식이 성장해서 부모의 품을 떠나 정신적, 육체적, 경제적으로 독립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이제 아들을 무조건 내 뜻을 따라주는 종속적인 존재가 아닌 동등한 독립적 인격체로 인정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지난 3월 코로나 19 사태가 시작됐을 때, 사람들은 서너 달쯤 지나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6개월이나 지난 지금도 사태가 진정될 기미는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코로나 사태가 마무리 되더라도 세상은 그 이전과는 많이 달라져 있을 것이다. 마치 아들이 아빠의 아들에서 아빠의 친구로 자리 잡은 것처럼.

 

 

안창해. 타운뉴스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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