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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 출근한 날
02/08/21  

출근길 라디오에서는 각종 소식을 전하고 있다. CSULA 캠퍼스를 코로나 19 백신 접종을 위한 장소로 선정했다면서 16일부터 접종을 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버스 정류소 앞에 접종을 위한 부스를 설치했다며, 대중교통 수단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접종을 쉽게 하기 위한 배려라고 덧붙인다. 주민들의 편의를 위해서 진작 그렇게 했어야 했다. 설을 맞이해서 한국계 은행들이 한국으로 송금 시 수수료를 면제해준다는 보도가 이어진다. 새해 인사를 나눈 지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설이라니.

 

평소보다 일찍 도착했다. 곧장 사무실로 올라가지 않고 앞뜰로 향한다. 날은 제법 따뜻해졌지만 뺨을 스치는 바람결에는 겨울 추위가 묻어 있다. 뜰의 대부분을 덮은 잔디 틈바구니에서 노란 꽃들이 먼저 반겨준다. 사람 손으로 심지 않았지만 제 스스로 찾아와 뿌리내리고 자라서 꽃을 피우고 씨를 남기기를 거듭하는 자생력 강한 꽃이다. 지난 가을 잔디와 건물 사이에 심었던 꽃모종 중의 일부도 여전히 꽃을 활짝 피우고 있다. 정성껏 돌보았지만 일부는 시들고 생명력을 잃은 지 오래다.

 

꽃들의 자태가 화려하다. 샛노란 화심에 보랏빛 꽃잎을 두른 놈, 보랏빛 화심에 샛노란 꽃잎을 두른 놈, 검푸른 화심에 흰 테두리를 한 보랏빛 꽃잎을 매달고 있는 놈, 뜨거운 가슴에 꽃잎 모두 오로지 빨갛게만 불타고 있는 놈. 손바닥만한 뜰에 스스로 피고 지는 꽃들과 사람이 심어 놓은 키 작은 꽃들이 작은 공간을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다.

바쁘다는 핑계로 눈에 보이는 꽃의 아름다움을 마음으로는 느끼지 못하고 살았다. 오늘 여유로운 시간이 생긴 것은 봄이 가까이 왔음을 느껴보라는 대자연의 깊은 뜻이리라.

 

성급하게 세상 구경 나온 푸른 싹들도 눈에 띈다. 모양새를 보니 영락없는 열무다. 지난해 말, 4년 전 세상을 떠난 아버지 방을 치우다가 편지봉투에 씨앗이 담겨 있어 뿌렸는데 그것이 열무 씨앗이었다. 그놈들도 봄기운을 느끼고 세상에 얼굴을 내민 것이리라.

 

가는 세월은 늘 아쉽다. 뒤돌아보느라 현재를 또, 오는 세월을 즐기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지난 일에 집착하는 성격은 아니지만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봄이 오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지 못하고 있었다. 겨울이 가면 봄이 오는 것이 자연의 이치인데, 이번 겨울은 심리적 추위까지 더해져 봄이 코앞인데 아직도 움츠러든 몸과 마음을 온전하게 펴지 못하고 있다.

 

‘행복’도 이 봄처럼 슬며시 왔다 느끼기도 전에 가버리는 것은 아닐까? 마음의 여유가 없어 곁에 와 있는 행복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과거의 기억으로만 행복해 하는 것은 아닐까? 아님, 내일의 행복을 위한다며 오늘의 희생을 참아내며 살아가는 것은 아닌가? 과거나 미래만 생각하면서 오늘, 지금 이 순간을 무심히 지나치는 것이 아닐까?

행복의 씨앗은 밖에서 날아와 싹을 틔우기도 하지만 그 씨앗이 든 봉투를 찾아 스스로도 씨를 뿌려야 한다. 그래야 더 풍성하고 화려한 행복의 정원이 만들어진다.

 

오늘 행복해야 한다. 지금 봄을 느끼고 즐겨야 한다. 봄은 영원하지 않다. 잠깐 왔다가 사라진다. 물론 올봄이 가고 나면 내년에 또 봄이 온다. 그러나 내년의 봄은 올해의 봄과 같지 않다. 이번 봄은 우리 인생에 단 한 번 경험하는 유일한 시간이다.

지금 곁으로 다가 오고 있는 봄을 만끽하자. 봄의 기운을 흠뻑 들이키고 온 몸으로 느끼고 즐기며 코로나 바이러스로 웅크렸던 몸과 마음을 일으켜 세우자. 계절은 어김없이 돌아오고, 우리도 더불어 흘러간다. 거대한 대자연의 순환 속에 찾아오는 이 봄은 무심히 흘려보내지 말아야 할 빛나는 행복이다.

 

코로나 19로 인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숨을 거두었던가.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불편을 겪고 있는가. 사업상 겪는 피해뿐만 아니라 우리들 모두가 겪고 있는 심리적 부담은 이루 말할 수 없으리라. 하루 빨리 코로나19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나 예전으로 돌아가야 한다. 좋은 사람들과 어울려 식사하고 차를 마시고 마음껏 웃고 이야기 하던 그 시절로 돌아가야 한다.

 

해가 거듭될수록 설날에 대한 추억이 더 뚜렷해진다. 늘 근엄한 표정을 잃지 않았던 아버지도 설날 아침에는 활짝 웃으며 덕담과 함께 세뱃돈을 나눠주셨다. 부모님은 세상을 떠났고, 아이들은 다 컸다. 손주들도 멀리 떨어져 살다보니 세뱃돈을 따로 준비하지 않아도 된다. 어릴 적 외할머니가 정성스럽게 차려주었던 설음식들이 그립다. 떡국, 갈비찜, 찹쌀떡, 유과, 식혜와 수정과.

여러분 모두 웃음과 행복이 가득한 설이 되기를 바랍니다.

 

출근 시간에 맞춰 늘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두 직원이 앞 다투어 주차장에 들어서고 있다. 오늘 또 새로운 일과를 시작한다.

안창해. 타운뉴스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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