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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의 변(辯)
02/22/21  

중학교 동창생 A가 전화했다. 오후에 만나자고 했다. 부지런히 달려갔다. 서로 사는 얘기를 나누고 일어서는데 A가 혹시 내일 골프를 칠 수 있냐고 물었다. 네 명이 치기로 했으나 두 사람이 일이 생겨 치지 못하게 되었고, 중학교 동창생 M과 둘이 치게 되었다면서 함께 치자고 했다. 친구 M은 십여 년 전에 미국으로 이주한 친구로 중학교 시절부터 아주 가깝게 지내는 친구다.

 

그렇다면 내가 한 친구를 초청해서 같이 쳐도 되겠냐고 물었다. 좋다고 했다. 골프장이 어디냐고 물으니 다이아몬드바 골프 코스라고 했다. 그 자리에서 친구 C에게 전화했다. C는 골프 친 지 10년도 넘어 민폐가 될 텐데 괜찮겠냐고 하면서 함께 치겠다고 했다. C는 중학교 동창생은 아니고 미국에서 만나 가깝게 지내는 친구다.

 

왜 A의 골프 치자는 제안에 선뜻 응했을까? 또 골프채를 잡은 지 10년도 넘었다면서 C는 무슨 마음으로 치겠다고 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다.

 

30년 전, 미국에 잠시 놀러온 내게 골프채 한 세트를 사준 사람이 바로 A였다. 십여 년 전부터 새로 장만한 것으로 치고 있기는 하지만 지금도 A가 사준 골프채를 갖고 있다. A가 며칠 연습시키고 처음 데리고 간 골프장이 다이아몬드바 골프 코스였다. 내게 골프채를 사주고 치는 법을 가르쳐 준 A와 함께 처음 라운딩한 곳에서 30년 만에 함께 친다는 것에 깊은 뜻이 있다고 생각되었다.

 

A로 인해 골프에 입문한 후 지금은 고인이 된 유명한 티칭 프로에게 레슨을 받았고, 지금도 활동 중인 티칭 프로에게도 지도를 받았었다. 골프에 한참 빠졌을 때는 웨스트리지 골프 코스의 멤버십에 가입해서 1년간 매일 아침 18홀을 돌고 출근하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골프 치는데 걸리는 시간과 골프 친 후에 사람들과 어울려 다니는 것이 다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면서 차츰 거리를 두게 되었고, 동창회 골프대회에만 가끔 나가곤 했었다. 지금은 이것도 삼가고 있다.

 

아무튼 그 A가 머리를 얹어준 골프장에서 30년 만에 골프를 친다. 뜻깊은 시간이 될 것이다. 오늘 친구들과 하는 라운딩을 나의 골프 은퇴식으로 삼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 은퇴식을 멋지게 장식하려면 연습 볼을 좀 쳐야하지 않겠는가? C에게 전화했다. 내일을 위해 오늘 연습 볼을 치자고 하니 지금 치과에 있다면서 끝나고 오겠다고 했다.

 

연습 볼을 여남은 개 쳤는데 숨이 차고 온몸이 아프기 시작했다. 잠시 쉬고 있는데 어금니를 뽑고 점심식사도 못했다면서 C가 달려왔다. 각자 한 바스켓씩 쳤다. C가 골프채를 휘두르는 나를 보고 덩실덩실 춤추는 것 같다고 말했다. 연습을 마칠 때쯤에는 온몸이 쑤시고 아팠다. 이런 상태로 과연 내일 은퇴식을 잘 마칠 수 있을까?

 

다음날 아침, 골프장으로 향했다. A가 점심으로 김밥을 준비해왔고, M이 바나나, 고구마, 오렌지가 들어 있는 봉투를 간식이라면서 나눠 주었다. 점심과 간식이 준비가 되었다. 골프 비용도 M이 네 명 분을 다 지불했다고 했다. 나는 저녁식사를 대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예상대로 골프는 엉망진창이었다. 한 번도 뜻하는 대로 공을 맞추지 못했고, 마음먹은 방향으로 공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매 홀, 공 찾느라고 헤매 다녔다. 특히 9번 파3 홀에서는 친구들 모두 물을 넘기고 비탈 위의 그린에 제대로 올렸으나 나는 공을 세 개나 물에 빠뜨렸다. 처음 필드에 나갔던 30년 전 그 날도 바로 여기서 공을 꽤 여러 개 물에 빠뜨렸었다. 그때도 오늘처럼 A가 공이 많다면서 마음 놓고 치라고 했었다. 결국 7개인가 빠트리고 건너편으로 간신히 넘겼고, 남들은 다 그린에 올렸는데 나 혼자 몇 번인가 더 쳐서 간신히 그린에 올렸던 기억이 났다.

 

공 3개를 빠트렸을 때, 바로 그때 결심했다. 여기까지다. 나는 그만 치겠다. 더 치라며 공을 건네주는 친구들에게 더 이상 물에 빠뜨리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리고 9번 홀 그린 위에서 친구들에게 선포했다. 오늘 경기를 끝으로 은퇴하기로 했는데 바로 여기 9번 홀 그린에서 하겠다. 남은 9홀은 더 이상 치지 않겠다. 친구들은 그래도 나왔으니까 그냥 치자고 했다. 그러나 은퇴식은 이렇게 중간에 해야 더 의미가 있지 않겠냐면서 그만 치겠다고 했다. 친구들도 더 이상 말리지 않았다.

 

저녁식사 자리에서 30년 전에 A가 골프채를 사 주었고 처음 나를 데리고 온 골프장이 바로 오늘 라운딩한 다이아몬드바 골프 코스였다고 말했다. A는 그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골프가 내게 잘 안 맞는 운동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친구들이 모두 골프를 치니까 나도 열심히 해봤고, 지인들과의 교류를 위해 쳤지만 이제는 더 이상 맞지 않는 운동에 시간과 노력을 할애하는 것보다 내게 어울리는 것을 즐기며 사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A가 나를 골프장으로 초대했듯이 친구들이 보고 싶을 때는 내가 좋아하는 산책 코스로 초대하면 되지 않겠는가? 은퇴를 결심했을 때 약간의 아쉬움도 있었지만 은퇴의 변을 써놓고 나니 속이 후련하다.

안창해. 타운뉴스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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