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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은 청춘입니까?
09/13/21  

세상에는 인생살이의 지혜를 담은 경구나 속담, 격언들이 넘쳐난다. 또 유명한 사람이 남긴 말이라면서 전해지는 것들도 적지 않다. 가끔 아! 이래서 이런 말이 있구나 하면서 무릎을 치거나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예를 들면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 '초록은 동색',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 등의 속담은 실생활과 직결되어 사회생활 하는데 적용한다면 크게 도움이 된다. 또, ‘너 자신을 알라’, ‘원수를 사랑하라’,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등에는 인간의 본성을 헤아린 지혜가 담겨 있어 나의 존재 가치를 일깨워주며, 대인관계에 도움이 되는 말로 우리들이 가끔 인용하기도 한다.

 

‘몸은 늙었지만 마음은 청춘’이라는 말도 자주 듣는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 것이라며 자신의 육체적 나이를 잊은 채 젊은이들이나 할 법한 일들에 도전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또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풍부한 경험과 지혜를 바탕으로 정신적으로 더 원숙해지고, 그 원숙함은 젊은이들과는 또 다른 아름다운 향기를 풍긴다고 믿는다. 따라서 늙는다고 추해지는 것이 아니고 새로워지고 아름다워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해왔다.

 

고교 시절부터 사무엘 울만의 시를 좋아했다. 그 시구를 입에 달고 살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즐겨 소개하기도 했다.

‘Youth is not a time of life. It's a state of mind. Years wrinkle the skin, but to give up enthusiasm wrinkle the soul.’

이 시구는 나에게 완벽한 진실이었다. 그러나 최근 스무 살 정도 차이가 나는 젊은 사람들과 2박3일 생활하면서 그 진실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들과 생활하는 동안 내 생각과 말과 행동이 그들과 많이 다르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들과 함께 산책하고, 식사하고 대화를 나누면서 엄청난 세월의 간극을 뼈저리게 느끼는 계기가 되었다. 아무리 그들을 흉내 내고 따라 가려고 해도 그 차이를 좁힐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몸은 늙어도 마음은 청춘’이란 명제는 거짓이다. '몸이 늙으면 마음도 늙는다'가 참인 명제이다. 아무리 마음을 젊게 가지려 해도 육신이 노화된 사람은 근본적으로 젊은이와 다르다. 우선 걸음걸이가 다르고 몸의 감각도 떨어진다. 이런 육신의 변화와 마찬가지로 마음가짐도 젊었을 때와 달라진다. 매사에 자신감이 떨어지고 의욕도 감소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몸은 늙었으나 마음은 청춘’이라고 외치는 사람들은 자신을 속이고 있는 셈이다. 아니 착각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어쩌면 육신이 늙어가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마음은 청춘’이라는 말로 위로받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한때 유행했던 ‘내 나이가 어때서’라는 노래도 이런 마음의 역설적인 표현일 뿐이다. 노래 가사처럼 ‘어느 날 우연히 거울 속에 비쳐진 내 모습’이 측은해 ‘세월아 비켜라’라고 노래 부르면서 마음의 치유를 얻는 것이다.

 

어느 날 회사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자기 이름을 대면서 내가 잘 아는 사람이라는 듯이 친근하게 인사를 했다. 하지만 이름만으로는 그가 누구인지 기억해 낼 재간이 없었다. 내가 머뭇거리고 있자 학교 다닐 때 사고뭉치였던 제자라고 자신을 소개한 후, 35~36년 전 있었던 일들을 어제의 일처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의 이야기가 낯설었으나, 듣다보니 기억 저편의 일들이 희미하게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가 아니었다면 전혀 기억해내지 못할 이야기들이었다.

 

헤아려 보면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상대방은 나를 몇 번인가 만났고, 식사도 함께했다는데 전혀 기억에 없는 사람도 있었다.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걸 보고 상대방이 몹시 실망하는 모습을 본 적도 있었다.

 

이런 일이 자주 반복되다보니 치매가 아닌가하는 의심이 들어 병원을 찾아간 적이 있었다. 주치의는 몇 가지 검사를 하더니 치매가 아니라며 신체 노화 현상의 하나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나이 들어 얼굴에 주름이 늘어나는 것처럼 기억력이 약해지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이었다.

 

주치의는 육신의 노화를 늦추고 건강한 정신을 유지하기 위한 몇 가지 손쉬운 방안을 소개했다. 첫째, 소식(小食)해야 한다. 과식은 만병의 원인이다. 둘째, 자꾸 움직여야 한다. 빨리 은퇴하려 하지 말고 몸이 허락할 때까지 일을 한다. 셋째, 사회 활동을 그치지 않고 지속한다. 넷째, 하루 30분이라도 매일 걷는다. 네 가지 모두 신체를 건강하게 유지하기 위한 것이다. 즉 몸을 건강하게 유지하는 것이 마음의 노화를 늦출 수 있다는 말 아니겠는가.

 

죽음을 막을 수 없듯이 늙는 것을 멈출 수는 없다. 그러나 노화를 인정하고 그에 순응한다고 해서 그것이 반갑거나 기쁜 것도 아니다. 그저 변화와 쇠락을 받아들이며 조용히 삶의 노을 속으로 저물어 갈 뿐이다. 그 와중에 건강을 유지하고 몸과 마음의 균형을 지키면서 적절히 늙다가 별 고생 없이 먼 길을 떠날 수 있다면 최상의 인생이 아닌가 싶다.

안창해. 타운뉴스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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