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수영
01/18/22  

지난주부터 수영을 시작했다. 큰 아이들은 코로나가 시작되기 전부터 강습을 받고 있었고 막내는 2년 넘게 내 옆에서 따분하게 형과 누나를 기다렸다. 그런데 최근 갑자기 "엄마, 나 그냥 차라리 수영 배울래. 기다리는 거 재미없어."라고 했고 그렇게 막내도 수영을 시작했다. 첫 수업을 다녀오더니 물에 고개 집어넣는 것을 했는데 수영이 너무 재미있다며 수영 가는 날이 제일 좋다고 야단법석이다. 나도 막내와 비슷한 이유에서 수영을 시작했다. 어차피 아이들 수영장 라이드를 해야 하고 이제 막내까지 수영을 시작해서 혹도 떼어냈는데 차 안에서 대기하며 휴대폰이나 들여다보느니 운동을 하는 게 좋겠다 싶었다. 

 

그래서 나는 30여 년 만에 어릴 적 내가 다니던 수영장으로 컴백했다. 나는 국민학교 6학년 때 1년간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이곳에서 수영 강습을 받았었다. 88 서울 올림픽 개최 후 얼마 되지 않았을 때라 올림픽 수영장 규모와 시설은 국내 최고 수준이었다. 그때 수영을 어찌나 좋아했던지 감기에 걸려 쉬어야 할 때도 고집을 부리며 수영장에 가곤 했었다. 나는 물이 좋았다. 물속에서 자유롭게 헤엄치는 기분이 마치 하늘을 나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했고 물결을 타고 내 몸이 빠르게 앞으로 나아갈 때 기분이 무척 좋았다. 하다못해 수영장에서 나는 소독약 냄새마저 사랑했다. 나중에 중학교에 진학하며 수영을 그만뒀는데 더 이상 내 살갗에서 수영장 냄새가 나지 않는다는 사실이 더할 수 없이 슬펐던 기억이 난다. 

 

정말 오랜만에 돌아온 수영장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애석하게도 나는 예전에 내가 아니었다. 물속에서 금붕어처럼 자유롭게 몸을 움직이던 나는 온데간데없고 거친 숨을 몰아쉬며 뻣뻣하게 움직이는 나만 있었다. 그렇다. 오랜만에 하는 수영은 결코 수월하지 않았다. 어쩌다 여행 가서 호텔 수영장에서 하는 수영이나 아이들 데리고 워터파크에서 하는 수영하고는 차원이 달랐다. 자유 수영이다 보니 강사도 없고 앞뒤 사람과의 간격을 고려하며 그저 묵묵히 50미터 레인을 계속 돌아야 하는데 어찌나 숨이 차던지 나는 계속 쉬어야만 했다. 우리 반은 주로 5-70대 분들이신데(내가 당연 최연소) 워낙 수영을 오래 하신 분들이라 힘을 쫙 빼고 천천히 쉼 없이 계속해서 레인을 도는 포스가 입이 딱 벌어질 정도다. 

 

오후 5시는 성인을 위한 수영 강습은 없고 자유 수영반과 노인들을 위한 실버반만 존재하는데 내가 오랜만에 들어온 신입이라 그런가 많은 이들이 관심을 보이는 눈치다. 첫날은 그저 힐끔힐끔 볼 뿐 선뜻 말을 시키거나 인사하는 사람이 없더니 둘째 날은 옆 레인 실버반 어르신들이 말을 걸기 시작했다. 손수 본인이 시범까지 보이시며 이렇게 해봐라 저렇게 해봐라 조언을 하시는데 조금씩 부담스러운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특히 수영은 운동 특성상 마스크를 쓰지 않고 있기 때문에 대화 자체가 불편한 것도 사실이다. 

 

셋째 날이었던 오늘은 최대한 눈빛을 피하기 위해 몸을 아예 뒤로 돌린 채 쉬고 있었다. 그러자 지난번에 시범을 보이셨던 어르신이 또 헛기침까지 하며 연신 신호를 보내기 시작했다. 지난번에 예의는 갖추어야 할 것 같아 열심히 경청했더니 눈만 마주치면 한마디라도 더 건네려는 기세다. 최대한 눈길을 피했지만 문제는 내가 쉬지 않고 계속 수영을 할 수 없고 아직은 50미터마다 멈춰 쉬어야 하는 처지이다 보니 대화 대상으로 안성맞춤인 것이다. 수영한 지 30분쯤 되었을 때 그 분과 딱 마주쳤고 아니나 달라 봇물 터진 듯이 또 이런저런 말들을 퍼붓기 시작하셨다. 매번 이런 식이시면 곤란할 것 같아 오늘은 큰 마음을 먹고 "나는 그저 조용히 자유롭게 수영하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하지만 말만 그렇게 했을 뿐 오늘 수영하는 내내 그분이 말씀하신 부분이 신경 쓰여서 나는 결코 자유롭지 못했다. "어른 말을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는 속담을 듣고 자라서 그런가…… 아니면 오랜만에 시작한 수영이 아직 몸에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가…… 이상하게 엄청 신경 쓰이네. 아무튼 또 이렇게 어쩌다 시작하게 된 수영, 기왕 시작했으니 하루빨리 30여 년 전 그때처럼 즐겁고 신나게 물속을 헤엄쳐 다닐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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