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법천지
08/08/22  

한 운전자가 갑자기 끼어드는 차량에 놀라 경적을 울렸다. 그리고 창문을 열고 운전 좀 조심하라고 한마디했다. 그러자 끼어든 운전자가 상대방 운전자를 쫒아가 총을 발사했다. 보도에 의하면 총상을 입고 병원에 입원해 있는 피해자는 공연히 한 마디 했다가 이런 일을 당했다면서 앞으로 이와 유사한 일이 발생했을 때 절대로 대응하지 않는 것이 편안하게 사는 길이라고 말했다. 무시무시한 세상에 살고 있다. 과연 2022년, 미합중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인지 믿을 수가 없다.

다음날 언론에서는 한 리커숍에 총을 든 강도들이 침입했으나 80대 업주가 샷건으로 격퇴시키고 도망간 일당을 경찰이 일망타진했다는 기사가 떴다. 모든 언론의 보도 내용은 무장 강도를 격퇴한 80대 주인의 용감한 행동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듯했다. 세리프의 발표는 더 가관이다. ‘이번 사건은 합법적으로 무장한 우리 커뮤니티 주민이 폭력 범죄를 예방하고, 다수의 무장 용의자에 맞서 자신의 안전을 지킨 사례'라며 강도를 물리친 80대 업주의 영웅적인 행위를 추켜세웠다.

영화의 한 장면이 아니다. 실제 상황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미국의 오늘이다. 끔찍하다. 내 목숨을 지키기 위해 무장해야 하는 세상, 사는 게 편안하지가 않다. 폭력, 그것도 총기를 든 사람들 앞에 완전히 노출되어 있으니 편안할 리가 있는가? 세리프의 발표 내용처럼 폭력 범죄로부터 나를 지키기 위해 총기로 무장해야만 하는가? 리커숍 주인은 총기를 갖고 있지 않았다면 결국 강도들에게 목숨을 맡겨야만 했다는 말이 아닌가. 언론도 세리프도 표면적인 현상에만 열을 올리며 허술한 치안과 자유로운 총기 소지라는 근본적인 문제를 피해가고 있지 않은가.

학교에서 총기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하자 교직원의 총기 휴대를 허용하자는 의견이 대두되었다. 현재 미국 50개 주 가운데 29곳 이상이 경찰이나 보안 직원이 아닌 교직원의 교내 총기 휴대를 허용한다. 오하이오주는 교직원의 총기 휴대를 위해 필요한 의무 교육 시간을 700시간에서 24시간으로 대폭 줄였다.

이는 미국 최대 총기 옹호 단체인 전미총기협회(NRA)의 "총을 쥔 악당을 막을 수 있는 건 총을 든 선한 사람뿐"이라는 주장과 일치한다. NRA는 총기 참사가 벌어질 때마다 "규제 대신 무장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텍사스주 법무장관 켄 팩스턴은 "총기 규제 강화법을 총격범들은 어차피 따르지 않는다"며 "준법 시민들이 무장하고 훈련을 받아 대응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낫다"고 했다.

그러나 총기 참사 예방과 대처를 위해 교직원의 무장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어불성설이다. 전문 훈련을 받은 무장 경찰조차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워싱턴포스트(WP)가 1999년부터 2018년까지 발생한 225건의 교내 총격 사건을 분석한 결과 학교에 무장 경찰이 있었던 사건이 40%나 되었지만 참사를 막지는 못했다. 경찰이 총격범에게 직접 총을 발사해 제압한 경우는 단 두 건뿐이었다.

총기 사고 방지를 위해 교직원의 총기 휴대를 허용하는 것은 오히려 학생들이 총에 맞을 확률을 높일 수도 있다. 2018년 3월 트럼프 전 대통령이 학교 총격 참사 대응책으로 '교직원 무장'을 제시한 지 이틀 만에 두 건의 교내 오발 사고가 일어나기도 했다. 이처럼 교직원의 무장은 실수로 발사될 위험에 노출되어 있으며, 총이 범죄자의 손에 들어갈 수도 있어 아이들을 안전하게 만드는 게 아니다.

앞의 두 사건 중 하나는 총탄이 주요한 부위를 피해 가서 다행히 목숨을 건졌고, 다른 하나는 무장 강도보다 먼저 발사해 목숨을 건진 것일 뿐, 만일 머리나 심장을 관통했다면 목숨을 잃을 끔찍한 사건이며 80대 업주의 경우도 만일 범죄자들이 먼저 발사했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것이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범법자들이 업소에 침입해 만나는 사람을 무조건 먼저 사살하고 다른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높아지지 않을까 걱정된다.

총기 사고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총을 휴대해야 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발상이다. 총기 휴대를 억제하는 것으로도 안 된다. 직업상 총기를 휴대해야 하는 사람들이 아닌 일반인들은 무조건 총기를 소지해서는 안 된다. 전면 규제만이 총기사고로부터 우리를 지키는 유일한 길이다. 총기 사고 억제를 위해 총기를 휴대해야 한다는 발상은 총기 소지자를 늘려 총기로 인한 사고 위험을 높이는 것과 다름없기에 대책이 될 수 없다. 총기사고 억제를 위해 교직원들의 총기 휴대를 권장하는 것은 총기 생산이나 판매로 밥벌이를 하는 사람들을 위한 정책에 지나지 않는다.

법을 뜯어 고쳐서라도 일반인들의 총기 소지는 전면 금지시켜야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총기 범죄가 기승을 부릴수록 총기를 구매하는 미국인들은 늘고 있다. 미국인 상당수가 이미 총기를 보유하고 있는 상황에서, 총기를 소지하지 않은 사람들이 총격의 희생양이 될 수 있다는 불안감에 앞 다퉈 총기 구매에 나서는 것이다.

하루 속히 일반인의 총기 소지 금지를 법으로 명문화해야 한다.

안창해. 타운뉴스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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