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좌
08/08/22  

요즘 재미있게 보는 먹방 중에 "밥맛 없는 언니들"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적게 먹는 것으로 유명한 "소식좌" 박소현과 산다라박이 유명한 먹짱들을 게스트로 초대하여 먹방 수업을 받는다는 콘텐츠로 기존의 먹방과는 거의 상반된다고 볼 수 있다. 기존 먹방이 무조건 잘 먹는 사람을 보며 "어떻게 저렇게 많이 먹지?" "어떻게 저렇게 먹지?" 하며 놀라워했다면 이 두 명의 연예계 대표 소식좌들을 보면서는 "어떻게 저렇게 조금 먹지?" "어떻게 저렇게밖에 못 먹지?" 하며 놀라워하는 것이다.

소식좌들은 프로그램에서도 절대로 과식하지 않는다. 딱 먹을 만큼만 먹고 배가 차면 게스트가 마지막 한 입을 권할 때 "잘 먹었습니다."라며 사양하고 식사를 중단할 수 있다. 지금까지 네 편을 보았는데 한결같이 "잘 먹었습니다."라는 인사로 프로그램이 끝났다. 심지어 고깃집에서는 고기 세 점을 먹고 배가 부르다며 "잘 먹었습니다."를 외쳤다. 박소현이 고기 세 점을 먹을 때 요리 연구가 이혜정은 고기 14점을 먹었다. 박소현이 "마지막 한 숟갈이 안 넘어갈 때 그걸 넘기는 방법이 무엇이냐?"라고 묻자 이혜정이 답답해 미치겠다는 듯이 "그건 몰라. 어떻게 안 넘어갈 수가 있어?"라고 말하는데 쓸데없이 너무 공감이 되어 한참을 웃었다.

요즘 매스컴에서 소식좌란 말이 자주 등장한다. 소식좌는 아주 적게 먹는 사람을 일컫는 단어로 그동안 무조건 많이 먹는 먹방에 지쳐가고 있던 차에 조금만 먹어도 배부르다는 소식좌들이 등장하자 훨씬 참신하게 다가오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이들이 바나나 하나를 두세 차례 쉬어가며 끝낸다든가, 등심 한 조각을 4분 53초 동안 씹고, 배가 고파도 귀찮으면 굶고 그냥 잠자리에 드는 모습 등은 신기함을 넘어 경이로울 정도이다. 그리고 소식좌들이 대세까지 될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어느 정도 트렌드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뭐든 잘 먹는 오빠와 대조적으로 어릴 때 나는 안 먹고 못 먹는 것이 꽤 많은 아이였다. 엄마는 식사 때마다 그런 나를 오빠와 비교하며 심하게 나무랐고 나는 그래서 식사 시간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그때 좋아하지 않던 메뉴들 중 일부는 지금 없어서 못 먹을 정도이고 몇 가지는 지금도 별로 즐기지 않는 것들도 있다. 어른이 되었더니 별로 즐기지 않는 음식은 식성으로 인정을 받는 것 같은데 어릴 때는 무조건 편식은 나쁜 것이라며 혼이 났던 것 같다. 뒤늦게 알았다. 나의 편식을 나무랐던 엄마도 안 먹는 음식들이 있다는 사실을......

요즘에는 우유를 소화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소화 잘되는 우유나 두유 등으로 대체가 가능해졌지만 옛날에는 우유 먹고 설사를 해도 계속 먹어서 체질을 바꿔야 한다며 무식하게 계속 먹이는 분위기였다. 개인의 식성이 존중받기보다는 집에서는 부모님 중심적으로, 학교 도시락은 그냥 정해진 도시락 반찬 패턴으로 먹는 것이 당연했다. 삼시세끼 챙겨 먹는 것이 그 무엇보다 중한 시절이었고 잘 먹는 게 복이고 어느 정도 통통해야 더 보기 좋다 하였다.

하지만 이제는 세상이 달라졌다. 하루에 한 끼만 먹는다는 1일 1식족들이 생겨났고 몸무게보다 골격근량과 체지방이 더 중요해졌고 이제는 적게 먹고 까다롭게 먹고 가려 먹는 사람들을 더 현명하게 바라보는 시선도 많아졌다. 주는 대로 받아먹고 무조건 잘 먹고 많이 먹는 것이 미덕인 시대는 지났다. 음식을 조금 먹는 것은 소식하는 건강한 식습관으로, 음식을 가려 먹는 것은 음식에 대한 신념과 식성이 다른 것으로 인정받는 시대가 온 것이다.

나는 소식좌와는 거리가 멀지만 그래도 기회가 된다면 소식좌들의 두 가지 식습관을 따라 해보고 싶다. 음식을 아주 천천히 먹는 것! 그리고 적당히 먹었으면 "잘 먹었습니다." 하며 숟가락을 내려놓는 것. 이 두 가지를 잘 못해서 늘 몸이 무겁다. 부디 새롭게 떠오르는 소식좌 트렌드에 발맞춰 나도 식습관에 변화를 시작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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