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음
11/21/22  

가끔, 아주 가끔 숨이 차고 가슴이 답답할 때가 있다. 가까이 지내던 이웃이나 친구 혹은 친척이 세상을 떠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친한 친구가 병들어 시한부 인생을 살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것도 아닌데 특별한 이유 없이 마음이 착 가라앉고 호흡이 가빠진다. 어떤 때는 울음이 터지기도 한다.
 
어제 아침 그랬다. 가든그로브에서 길버트(Gilbert st.) 길을 따라 오르던 중 갑자기 울음이 터졌다.
 
이태원 참사 보도를 전해 들을 때마다 숨이 턱턱 막히기도 했다. 어찌 대한민국 수도 한복판에서 이렇게 끔찍한 사고가 발생한 것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게 울음의 원인이 아닌 것은 확실하다. 한국에서 벌어진 이해하기도, 용납하기도 힘든 사실에 가슴이 철렁하고 먹먹해지긴 했지만 갑자기 터진 울음은 아무리 생각해도 그 참사 때문이 아니었다. 그냥 영문을 모르는 울음이 터져버린 것이다.
 
운전대를 잡고 어깨를 바로 펴고 정면을 직시하면서 흐르는 눈물을 닦지 않고 엉엉 소리 내어 울면서 페달을 밟았다.
1999년 11월 어머니 돌아가시고 한동안 차안에서 울었었다. 그리고 처음이다. 다행스럽게도 길버트 길은 우선 정지 사인이 곳곳에 있으며 길이 넓지 않고 2차선과 1차선의 좁은 길이 계속되기 때문에 차들이 속력을 내지 않는다.
 
새벽에 집을 나와 풀러턴, 부에나파크, 세리토스를 거쳐 가든그로브에 있는 마켓 앞의 타운뉴스 가판대를 돌아 보니 날이 훤해졌다.
 
세리토스에서 라팔마 길을 따라 동쪽으로 운전하면서 떠오르는 태양에 의해 동녘 하늘이 점점 붉게 물드는 것을 보았다. 어느새 붉은 빛이 사라지고 환한 아침이 되는 것을 보면서 아침을 맞이하는 기쁨을 즐겼다. 그런데 일을 다 마치고 집으로 향하는데 울음이 터진 것이다.
 
내 마음 속을 들여다본다. 11월 8일 있었던 2022 중간 선거 기간 동안 노심초사하며 한인 후보자들의 당선을 위해 여러 사람들과 함께 응원했다. 다행스럽게도 연방 하원의원 재선에 도전한 남가주의 두 후보는 당선권에 들었다는 소식이 있었고, 또 다른 지역의 두 의원들도 재선, 그리고 3 선에 성공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그러나 오렌지카운티 수퍼바이저에 도전했던 후보는 안타깝게도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 하지만 그는 낙담하지 않고 한인들이 모이는 곳마다 찾아다니면서 성원에 감사한다는 인사를 전하고 있다. 이번 선거에서의 실패에 좌절하지 않고 다음 선거에 도전할 것이란 굳은 의지를 알리는 모습이어서 마음이 편안해졌다. 또, 주하원에 처음 도전한 한 후보는 이 글을 쓰고 있는 현재 수백 표라는 근소한 차이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고 있어 승패에 관계없이 선전했음에 감사한다.
 
이번 2022 중간 선거의 결과도 갑자기 터진 울음의 원인이 아닌 것이 분명하다. 선거 결과에 실망하거나 좌절할 일이 없었으니 그로 인해 울음이 터졌을 리 만무하다.
 
집으로 돌아와 옷을 갈아입고 여느 날처럼 공원으로 향했다. 매일 함께 공원을 산책하는 친구도 같은 시간 공원에 도착했다. 체조를 하고 걷기 시작했다. 몇 걸음 떼지 않아 친구가 우울하다고 말했다. 우울한 까닭을 물으니 어제 아들과 골프를 쳤는데 잘 안 맞아서 그런 것 같다고 대답했다. 그에게 그럼 골프를 아예 치지 말거나 연습을 많이 해서 실력을 늘리면 우울할 일이 없지 않겠느냐고 말해 주었다. 산책을 마칠 때쯤 친구는 일주일에 두 번 정도 골프 연습을 하기로 마음먹었다며, 그러고 나니 우울한 마음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살다보면 원인을 알 수 없는 일들이 많다. 우리를 고통스럽게 만드는 질병도, 불현 듯 찾아오는 감정도 그 까닭을 알 수 없는 경우가 부지기수이다. 친구의 우울한 감정처럼 그 원인을 알 수 있다면 현상이나 증상을 개선할 수 있지만, 갑자기 터진 내 눈물처럼 원인을 알 수 없는 것이라면 묵묵히 그 감정이 누그러질 때가지 스스로 견뎌내는 수밖에 없다.
 
물론 원인이 확실한 감정도 그 감정을 다스리기 힘든 경우도 적지 않다. 특히 처절한 슬픔을 당한 사람들의 마음에는 그 흔적이 오래 남을 수밖에 없다. 158명의 젊은이들이 희생된 그 참사로 가슴에 피멍이 들었을 유가족들과 한국민에게 심심한 위로의 말을 전한다. 그리고 부디 그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기를 바란다. 이 참사의 원인을 철저히 수사하고 분석하여 현재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구조적 문제점과 부조리를 개선하고 해결하는 밑거름으로 삼기 바란다.
 
친구와 헤어져 사무실로 향하며 날짜를 꼽아 보니 어머니 기일이 내일 모레다. 23년 전 지금의 내 나이 때 어머니께서 세상을 떠나셨다. 그날을 내 몸과 마음이 기억하나보다.

안창해. 타운뉴스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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