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숨
11/21/22  

지옥철이라고 불릴 만큼 붐비는 출근시간 지하철을 탔는데 옆에 앉은 승객이 쉬지 않고 한숨을 내쉰다. 잊을만하면 다시 들려오는 한숨 소리에 최대한 곁눈질로 그를 보니 축 처진 어깨에 두 눈은 꼭 감고 있다. 마스크 착용으로 예상하기 쉽진 않지만 대충 30대 초중반 정도 되어 보이는데... 집안에 우환이 있나 무슨 큰일을 앞두고 있나 실연이라도 당한 걸까 별의별 생각이 다 든다. 이게 모두 그 한숨 때문이다. 

아무 말도 안 했고 그저 숨일 뿐인데 한숨은 많은 것은 내재하고 있다. 별생각 없이 내뿜은 의미 없는 숨이었을지도 모르는데 생판 모르는 옆 사람마저 신경 쓰이게 하니 같이 사는 가족의 한숨은 오죽하랴...

엄마가 내쉬던 한숨을 기억한다. 어릴 때는 엄마가 말없이 한숨을 쉬면 야단을 치거나 소리를 지를 때보다 더 불안하고 무서워 내 작은 가슴이 콩닥거렸다. 내가 어른이 되고 나니 엄마의 한숨 소리가 훨씬 더 무겁게 들린다. 그 한숨의 원인이 나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일까... 내가 첫째 출산 후 복직을 하고 친정엄마가 3년 정도 아이를 돌봐주셨는데 퇴근하고 집에 가면 엄마는 쉴 새 없이 한숨을 쉬셨다. 땅이 꺼질 듯한 엄마의 깊은 한숨 소리가 들려올 때면 나는 극심한 죄책감과 아이를 맡겨야 하는 이 상황이 원망스러워 마음이 몹시 괴로웠다.  

나도 심하다 싶을 정도 푹푹 한숨을 내쉬어 본 적이 있다. 아침에 일어나면서부터 한숨, 앉았다가 일어나는데도 한숨, 빨래를 개면서도 한숨, 음식을 씹다 말고 한숨, 저물어가는 석양을 보면서도 한숨... 사는 게 막막하다 못해 지금 이 순간을 버티는 것조차 힘에 겨웠던 날들이었다. 이 한숨이라는 게 크게 한 번 내쉬고 툭툭 털고 일어서면 괜찮은데 쉴 새 없이 터져 나오는 신음 같은 한숨이 제일 고약하다. 이건 거의 습관에 가까워서 거의 모든 일을 하기 전에 튀어나오기도 하고 주위 사람들도 어느덧 한숨을 쉬게 만드는 강한 전염성까지 갖고 있다. 

하지만 살다 보면 내 의지와 상관없이 숨쉬기가 버겁고 가슴이 터져버릴 것만 같은 순간들이 불쑥불쑥 찾아온다. 그럴 때 나는 의식적으로 큰 숨을 쉬려고 노력하는데 이게 한숨인지 큰 숨인지 그 기준은 애매모호하다. 아무튼 폐가 부풀어 오르는 것이 느껴질 정도로 코로 산소를 최대한 들이마시고 "후"하고 크게 숨을 내뱉는 것을 몇 번 반복하고 나면 신기하게도 조금씩 숨이 쉬어진다. 어떻게든 살기 위해서 몸도 알아서 반응하는 것을 보면 참 신기하다. 

이 세상에는 각기 다른 처지에서 내쉬는 한숨들이 있다. 원망, 실망, 고단함, 짜증, 분노, 안타까움, 난감함, 불편함의 표현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삶을 뒤흔드는 처절한 고통 속의 신음, 또 누군가에게는 슬픔에 절규하는 몸부림일 수도 있다.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가끔은 참지 말고 내뱉을 필요가 있다. 한숨이 뭐 대단한 치료책이나 해결책이 되어줄 순 없지만 조금이나마 답답한 가슴에 숨통을 트게 해 준다면 그대로라도 괜찮을 것이다. 


숨을 크게 쉬어 봐요

당신의 가슴 양쪽이 저리게

조금은 아파올 때까지

숨을 더 뱉어 봐요

당신의 안에 남은 게 없다고

느껴질 때까지

남들 눈엔 힘 빠지는

한숨으로 보일 진 몰라도

나는 알고 있죠

작은 한숨 내뱉기도 어려운

하루를 보냈단 걸

이제 다른 생각은 마요

깊이 숨을 쉬어 봐요

그대로 내뱉어요

- 이하이의 <한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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