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가 세상을 구한다
12/12/22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딱히 할 말이 없을 때 나는 요즘 슬며시 고양이 카드를 꺼내 든다. "고양이 두 마리를 키우는 집사"라는 말 한마디만으로 순식간에 사람들의 호응을 가져올 수 있고 한동안 대화가 끊이지 않고 유지되기 때문이다. 특히 어쩌다 마주하는 MZ 세대들과는 딱히 공통 화제가 없어서 난감할 때가 있는데 고양이 이야기만큼은 실패 없이 잘 통하는 화젯거리이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고양이에 대한 관심이 날로 높아져서 고양이 관련 캐릭터, 웹툰, 전시회, 서적 등도 반응이 좋고 SNS에서 고양이 스타들도 많이 생겨나고 있는 추세이다. 고양이를 키우는 나로서는 매우 반가운 일이다. 

고양이 두 마리가 우리 집에 온지도 거의 2년이 다 되어간다. 한 손으로 번쩍 들어 올릴 정도로 작았던 아이들이 이제 두 팔로도 겨우 안을 수 있을 정도로 커버렸다. 눈만 마주치면 슬금슬금 피하기 급했던 아이들이 이제 눈이 마주치면 내 곁으로 다가올 줄도 안다. 아기처럼 내 곁에서 울며 보채기도 하고 능청스럽게 내 베개를 베고 누워 자기도 한다. 두 마리 중 심장 판막 기형이 있는 한 마리는 동물 심장 전문의로부터 언제 급사해도 놀랍지 않다는 끔찍한 소리를 들어야 했지만 다행히 아직 우리 곁에 있다. 언젠가 이별할 수 있다는 두려움이 내 한쪽 가슴을 살며시 짓누르고 있지만 그 두려움 따위가 오늘의 행복과 즐거움을 가로막아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 고양이들은 내가 가장 힘들 때 나에게 와준 귀한 선물이다. 집에 혼자 있는 것이 괴롭고 두려웠을 때 그들을 데리고 왔다. 딱히 서로 해주는 것도 없고 하루 종일 붙어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고양이들이 나타난 이후로 그들이 집 안 어딘가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왠지 모르게 든든했다. 솔직히 다른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았다. 그저 고단한 몸을 이끌고 집에 들어왔을 때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내게 걸어오는 그것만으로, 기분 좋을 때 눈을 가늘게 뜨고 지긋이 나를 바라보아주는 것만으로…... 정말 그 어느 때보다 큰 위로를 받고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강아지처럼 달려와 안길 줄도 모르고 좋다고 꼬리 칠 줄도 모르고 애정 표현이라고는 그저 동그란 이마와 귀여운 코를 내 몸 어딘가에 툭툭 부딪히며 비비는 게 전부이지만 그게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그걸로 충분하다. 

고양이는 정말 내게는 너무나 완벽한 반려동물이다. 적당한 거리를 두면서도 예상치 못한 순간에 애교를 부리며 내 곁으로 다가오는 너무 귀여운 동물이니 말이다. 게다가 고양이를 키우는 데는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다. 신선한 물과 입맛에 맞는 사료, 깨끗한 화장실과 수직 공간 정도만 있다면 더 이상 바라는 것이 없다. 개처럼 짖지도 않고, 매일 산책을 시켜줄 필요도 없고, 놀아주지 않는다며 토라지는 일도 없다. 하루 종일 하는 일이라고는 어딘가에 축 늘어져서 잠을 자거나 쉬는 것이 전부이지만 한동안 너무 인기척이 없어서 "어? 어디 갔지?" 하고 두리번거리면 항상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다. 

정말 완벽에 가깝지만 그들에게도 치명적인 결함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민들레 홀씨처럼 나부끼는 고양이 털이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배큠을 해도 그들이 머물던 곳에는 항상 흔적이 남아있고 온 식구 옷이며 양말에는 아무리 돌돌이 테이프로 떼어낸들 그 얇고 부드러운 털에서 완벽히 벗어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게 2년을 살다 보니 점점 검은색 옷은 피하게 되었고 집으로 손님을 초대하는 일도 훨씬 줄어들었다. 어찌 보면 정말 심각할 정도의 결함이 맞는데 그렇다 한들 이들이 없는 삶은 이제 상상할 수조차 없다. 

알버트 슈바이처는 불행한 인생에서 벗어날 수 있는 두 가지 방법은 음악과 고양이라고 했다. 한 예로 슈바이처는 굉장한 애묘인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의 고양이 시지는 슈바이처의 팔에 기대서 자는 버릇이 있었다고 한다. 사실 그전까지 슈바이처는 왼손 잡이었는데 팔에 기대 곤하게 자는 시지를 차마 깨울 수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오른손으로 처방전을 쓰기 시작했고 결국 그는 양손잡이가 되었다고 한다. 고양이를 키워본 적 없는 사람들이 들으면 '아니 뭐 그렇게까지…...?'하고 의아해할지 모르지만 고양이를 키워본 사람이라면 아마 대부분 공감할 것이다. 내 팔에 기대어 잠든 고양이를 결코 깨우고 싶지 않은 그 심정을 말이다.

고양이를 키우는 집사들은 종종 "고양이가 세상을 구한다"는 말을 하곤 한다. 행복을 느끼기 위해서는 이것저것 다 필요 없고 그저 고양이만으로 충분하다는 뜻이다. 그만큼 귀업다는 것인데 이런 심정은 분명 고양이를 키워봐야만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도 나로부터 1.5미터 떨어진 곳에서 (언제든지 나의 움직임을 살필 수 있는 거리) 잠들어 있는 고양이를 보면서 나는 오늘의 고단함을 모두 보상받는 느낌을 받는다. 이게 대체 무슨 기분인지 궁금하다면 역시나 말로는 어렵고 직접 고양이를 키워보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엄두가 나지 않는다면 주변 길고양이나 지인의 고양이로 체험을 해보는 방법도 있는데 이게 이게…... 낯을 가리는 고양이들이 워낙 많다 보니 함께 사는 가족에게도 몇 달씩, 심하면 몇 년씩 마음을 열지 않는 아이들도 있어서…... 언제쯤 고양이로부터 구원을 받을 수 있을지는 아무도 장담을 할 수가 없다.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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