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 크리스마스!”
12/19/22  

우리가 사는 남가주에 겨울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간혹 만난다. 그 사람들 대부분은 한국에서 온 지 얼마 안 되었거나 추운 지방에서 살다온 사람들이다. 필자도 30여 년 전 한국에서 남가주로 이주한 후 그들처럼 한동안 겨울을 느끼지 못하며 살아왔다. 그러나 살다보니 분명히 이곳에도 겨울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곳의 겨울철 낮 기온은 화씨 60도~70도를 오르내리고, 80도를 넘는 날도 가끔 있는 편이라 비가 오거나 바람이 부는 날이 아니면 낮에는 그리 추위를 느끼지 못한다. 그러나 밤사이 기온은 40도를 넘나들기에 추위를 피부로 느끼게 된다. 이런 까닭에 이맘때면 아침저녁으로 두터운 털스웨터를 입거나, 두툼한 재킷을 걸치기도 한다. 또 잠자리에서는 전기담요를 깔고, 두꺼운 이불을 찾게 마련이다.

겨울하면 첫 번째로 떠올리는 눈을 우리들이 사는 도시에서는 구경하기 어렵다. 그러나 LA에서 한 시간 반, 오렌지카운티에서 한 시간만 차를 타고 가면 눈 덮인 산을 만날 수 있다. 빅베어나 마운틴 하이 등 스키장도 여러 곳에 있다. 산에 눈이 내릴 때 우리들이 사는 도시에는 비가 온다.

비가 그치고 나면 하늘은 구름들의 요란한 경연장이 되어버린다. 하얀 구름, 회색 구름, 검은 구름이 뭉쳤다 흩어졌다 하늘에서 찬란한 쇼를 펼친다. 이 구름 또한 빼놓을 수 없는 남가주의 겨울을 특징짓는 요소 중 하나다. 이처럼 남가주의 겨울은 한국의 겨울과는 확실히 다른 얼굴을 하고 있다.

남가주의 겨울을 이야기하면서 겨울밤의 정경을 빼놓을 수는 없다. 각종 전구로 치장한 집들은 12월의 밤이면 찬란한 보석의 향연을 펼친다. 나무와 지붕, 처마를 두르고 있는 전구들의 휘황함과 성탄의 의미가 담긴 장식들을 보고 있노라면 하루 종일 쌓인 피로가 한순간에 눈 녹듯이 사라져 버린다.

이민생활 초기, 아이들 어릴 때 한동안 크리스마스트리를 꾸몄었다. 생나무는 엄두를 못 내고 조그만 인조 트리를 사다가 리빙룸 구석에 세워 놓고 꼬마전구를 빙 둘러 감았다. 그런대로 크리스마스 기분이 났다. 몇 해 시늉을 내고는 바쁘게 사느라고 인조 트리를 차고 어딘가에 깊숙이 넣어 두고는 잊고 지냈다. 생활에 쫓겨 바쁘다는 핑계로 생각은 하면서도 정작 꾸미지는 못한 채 해를 넘기곤 했다.

막내가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는 해마다 농구팀에서 파는 크리스마스트리를 구매했다. 소나무 향이 싸하게 콧속을 간질이는 오레곤에서 자란 ‘더글러스 퍼’, ‘노블 퍼’ 등이다. 농구팀의 빈곤한 재정을 채우려는 의도를 알기에 한 번도 빠뜨리지 않고 매년 구매해 식구들이 함께 모여 솔향을 맡으며 트리를 꾸미고 장식을 했다. 아들의 고교 입학과 함께 시작한 크리스마스트리 만들기는 졸업과 동시에 사라져버릴 뻔했으나, 때맞춰 크리스마스트리 앞에서 선물 뜯기를 좋아하는 나이가 된 손주들을 위해 이어져 오다가 큰딸 가족이 한국으로 이주하면서 이제는 추억이란 이름으로만 존재하고 있다.

이맘때면 그 트리의 향과 트리를 장식하며 아이들과 나누던 대화가 그립다. 얼마 전 그때의 추억이 떠올라 아이들에게 트리를 만들자고 제안했지만 이제 어른이 된 아이들은 전혀 관심을 나타내지 않는다. 왜 나는 자꾸 트리를 꾸미고 싶어 할까?
트리를 예쁘게 치장해놓고 깜박거리는 전구와 크리스마스 장식을 보면서 삶에 지친 나를 스스로 위로하고 싶은 것은 아닐까.

위로는 따뜻한 말 한마디로 오기도 하지만, 눈에 보이는 아름다운 것에서 얻기도 한다. 그저 푸른 한 그루의 소나무에 불과하지만 갖가지 아름다운 장식과 영롱하게 반짝이는 불빛으로 치장하고 나면 크리스마스트리로 승화된다. 좋아하는 장식을 나무에 걸고 불을 밝힐 때 그 행위는 그저 나무를 치장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 속 깊은 곳에 환한 위로의 등불을 켜는 것이다.

마음 속 등불과 크리스마스트리의 등불이 합쳐져 빛을 발하는 따뜻한 성탄이 되기를 기원하며 예수의 가르침을 되새겨 본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 너희로 하여금 쉬게 하리라(마태 11:28)" 예수는 인류에게 참된 위로의 등불을 밝혀 들었다. 예수의 자비와 사랑, 예수가 제시한 편안함과 기쁨, 쉼과 회복을 통해 우리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는 짐들로부터 벗어나 보자.

비록 크리스마스트리는 꾸미지 못했지만 마음 속 나만의 트리에 불을 밝힌다. 소박한 위로의 불빛이 퍼져나가 온 세상에 평화가 깃들기를 기원한다. 우리 모두 마음속 트리에 불을 켜고 남가주의 겨울밤을 따뜻하게 밝혀보자. “메리 크리스마스!”

안창해. 타운뉴스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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