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이놈의 스키
01/09/23  

우리 아이들은 매년 겨울이 되면 스키 레슨을 받으러 다닌다. 어렸을 때부터 수영이고 스키고 일단 기회를 주는 미국 부모들을 보며 감명을 받기도 했고 어떤 운동이든 이른 나이부터 시작할수록 습득이 빠르고 두려움도 적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매년 무리해가면서도 열심히 스키 교실에 보내는 이유에는 엄마의 한이 서려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스키를 못 탄다. 내가 어릴 때는 주변에 스키를 배우는 아이가 없었다. 우리 시대 사람들은 대부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난 이후에나 스키를 배울 기회가 생겼을 거다. 나도 미국에 살면서 스키를 탈 기회는 있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매년 성당에서 스키 트립을 갔었기 때문이다. 그때 정식으로 스키 강습을 받지 않고도 대충 기본 몇 가지만 배워서 스키를 타는 친구들도 더러 있었다. 하지만 나는 스키는 타지 않았고 스키를 타지 않는 그룹에 섞여 숙소에서 게임을 하거나 음식을 해 먹고 썰매를 타러 가거나 하며 시간을 보냈다. 스키는 타지 않았지만 또 이 나름대로의 재미가 있어서 매년 스키 트립은 빠짐없이 참석했다.

그냥 이대로 스키장에 놀러 가서도 스키를 타지 않는 사람으로 살아도 괜찮겠구나 싶었다. 아무런 불만도 아쉬움도 없었다. 그런데 사람 일은 아무도 모른다더니 작년 겨울 난생처음으로 스키를 타봤다. 주변에서 하도 지금이라도 배워둬야 나중에 같이 스키 여행도 다닌다며 부추기는 통에 수차례 고사하다가 결국 마지못해 떠밀려 첫 레슨을 받은 것이다. 

"나이 먹어 시작했지만 생각보다 쉽고 재미있어서 왜 진작 배우지 않았나 후회된다."와 같은 아름다운 반전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선생님이 내 스키를 붙잡고 안심하라고 몇 번이나 어르고 달랬지만 나는 두려움에 휩싸여 계속 앞으로 팔을 휘저으며 (스키 스틱은 애초에 던져버림) "어어어어어어어어~~~~"하면서 겁에 질려 내려왔다. 그 다음에는 선생님이 다른 수강생을 봐주는 사이 "어어어?" 하다가 '에라 모르겠다' 하고 넘어져버렸다. 일부러 넘어지지 않으면 이상하게 부딪혀 넘어질 것 같아서 잘해볼 생각은 안 하고 그냥 넘어져 버린 것이다. 

넘어지고 나니 그 다음이 문제였다. '어떻게 일어나지?' 이미 내려간 선생님이 다시 리프트를 타고 올라올 때까지 기다리자니 너무 오래 눈밭에 앉아있어야만 했다. 유치원생들도 잘만 내려오는 초급 코스에서 그렇게 넋 놓고 있을 수는 없었다. 밑에서 선생님이 걱정스러운 듯 나를 바라보는 게 느껴졌고 일단 흥분한 가슴을 진정시키고 스키를 벗었다. 스키를 신은 채 일어나는 것이 더 무서웠기 때문에. 그 다음에 스키가 앞으로 질주하지 않도록 가로로 고정해두고 다시 신고는 그렇게 땀범벅이 된 채 혼자 겨우겨우 밑으로 내려왔다. 하지만 그 이후로 다시 스키를 타고 싶은 생각이 싹 사라졌다. 이럴 땐 참 필요 이상으로 사람이 칼 같다. 

내가 겁이 많아 자전거랑 스키를 못 탄다고 하면 주변에서 다들 믿지 않는다. 나는 고소공포증도 없고 심지어 무서운 놀이기구들도 잘 타는 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와 뒤돌아보니 나는 어려서부터 항상 부딪히거나 넘어지는 것에 대한 공포가 있었던 것 같다. 무서운 놀이 기구는 타면서도 범퍼카를 싫어하는 것도, 자전거를 못 타는 것도, 등산할 때도 하산 시 훨씬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도 모두 넘어지고 부딪히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기 때문이었다. 수영을 배울 때도 앞뒤 사람과 부딪히는 것에 대한 스트레스가 심해 간격 조절에 특별히 신경을 써야만 했다. 그렇다고 내가 과거에 심하게 넘어져서 크게 다치거나 뼈가 부러져본 적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참 이상하게 부딪히거나 넘어지는 것이 무섭고 그 중에서도 스키는 그런 나의 두려움을 극대화시키는 운동이다.

스키…... 너 이놈의 스키…… 미련 없이 놓아준다. 내 비록 영영 스키는 못 탈 것 같지만 앞으로도 스키 트립은 즐거운 마음으로 쫓아다닐 생각이다. 남들 스키 탈 때 나 홀로 휴식도 나쁘지 않으리라. 혼자 혼밥도 먹고 으어? 사우나도 가고 으어? 다할 거라고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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