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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치다꺼리를 하다가
02/13/23  

돌발성 난청으로 병원에 입원해 있던 5박 6일간 병실에 다른 환자들 코 고는 소리와 신음소리, 기침과 가래 뱉는 소리 때문에 괴로웠고 잠도 잘 자지 못했다.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다른 병에 걸리겠다며 하루빨리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며 툴툴거렸다. 집에 돌아와 내 침대, 내 이불속에 누우니 익숙한 냄새가 너무 편안하고 좋아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하지만 평화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아이들에게 엄마가 스트레스를 받으면 또 귀가 안 들릴 수도 있다며 으름장까지 놓았지만 약발은 며칠은커녕 몇 시간도 채 가지 않았다. 나의 뒤치다꺼리 업무는 쉼 없이 바로 재개되었고 일상으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입원 생활이 그리워질 것만 같았다. 따박따박 시간 맞춰 삼시세끼 먹는 것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할 일이 없던, 그저 내 한 몸만 챙기면 되었던 그 시간이 말이다. 

나는 5년 전 미국에서 한국으로 오면서 집에서 일하는 엄마가 되었다. 살림만 하는 완전 전업주부라고는 할 수 없고 다양한 일을 하면서 경제활동도 하고 있지만 출퇴근은 하지 않으니 누가 봐도 전업주부인 셈이다. 처음 1,2년은 너무 좋았다. 동네 친구들과 아침부터 만나 커피도 마시고 아이들 학원 간 사이에 낮술도 마셔보고 같이 마트로 장도 보러 다니니 그렇게 신이 나고 재미있을 수가 없었다. 워킹맘으로 살던 내내 내가 꿈꾸던 라이프가 아니었던가! 그러다가 언제부턴가 알 수 없는 불안에 시달렸다. (그쯤 해서 이력서를 쓰고 즉흥적으로 취업도 했었음)

하루 종일 뭔가를 하고 있었는데 뭘 했냐고, 바빴냐고 물어보면 할 말이 없었다. 아무것도 한 일이 없는 것만 같아 자괴감이 밀려오고 패배감마저 들었다. 집안일을 하고 가족들을 챙기고 돌본다는 것을 아무리 그럴듯하게 포장해 봤자 전업주부 (사전적 의미: 다른 직업에 종사하지 않고 집안일만 전문으로 하는 주부)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집안일을 전문으로 하는 주부에 걸맞지 않게 살림이 적성에 맞지 않았다. 나는 야무지고 알뜰하게 집안일을 하지도 못했고 요리나 청소가 재미있지도 않다. 아이를 넷이나 낳아 어쩌다 애넷맘이 되었지만 육아의 달인이 될 수도 없었다. 성향도 식성도 모두 다른 애 넷을 키우며 하루에도 수십 번씩 인내심이 한계에 부딪힐 때면 나는 수시로 내 모성을 의심했다.

집안일만 전문으로 하면서 그럴듯한 프로 전업 주부가 되지도 못했지만 만약 그렇게 되었어도 억울했을 뻔했다. 보통 사회활동을 통해 발생하는 연봉은 그 사람의 객관적 가치와 능력을 의미하는데 전업주부의 노동력을 산정하는 것은 어차피 불가능한 일이니까. 가정주부를 전문직처럼 제대로 대우해 주었다면 우리 어머니들은 지금쯤 기업 임원 대우를 받아 마땅하지만 어느 누구도 그렇지 못하다.

보수는커녕 그 누구도 칭찬이나 격려를 해주지 않는다. "청소는 청소기가, 빨래는 세탁기가 해주고 수시로 배달음식을 먹고 간편식으로 끼니를 해결하는데 뭐가 힘드냐"라고 반문하는 사람이나 없으면 다행이다. 위로도 격려도 뭣도 아닌 "육아나 살림이 나가서 돈 버는 것보다 더 힘들지"라는 말 뿐인 치하에 아무도 감격하지 않는다. 사회적 인정은 고사하고 식구들에게조차 인정을 받지 못하기가 부지기수니깐......

몇 해 전인가 학원 가기 싫어서 몸을 비비 꼬던 셋째가 "아…... 엄만 좋겠다. 집에서 아무것도 안 해도 되니깐…..." 하며 나를 부러워했을 때 나는 평소처럼 "야 이놈아! 모르면 가만히 있어라." 하며 빠르게 반격하지도 못했다. 시시콜콜 내가 하는 뒤치다꺼리 업무들을 나열하면 할수록 뭔가 더 깊은 자괴감에 빠지는 느낌이랄까......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고 안 하면 큰일 나는 일들이지만 전혀 뽀대가 나지 않는단 말이다. 

하루하루 식구들 뒤치다꺼리를 하다가 내가 괜찮은지 돌아보지 않고 그냥 어물쩍어물쩍 살아간다. 그날그날 그 순간마다 할 일들에 쫓겨서 말이다. 아침이 오면 일어나 아이들 밥을 챙기고 그날의 스케줄을 소화하고 아이들이 하나둘 돌아오면 또 밥을 챙겨주고 치우고 씻고 하다 보면 하루가 다 가버린다. 닥치는 대로 살고 있다고 해야 할까? 나는 이렇게 괜찮은 걸까? 나 자신에게 안부를 물어본다. 3주간의 봄방학이 시작되어서 그런가…... 부쩍 심난하네. 에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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