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벨리은행(SVB) 파산 사태
03/27/23  

실리콘밸리은행(SVB)이 3월 11일 파산 절차에 돌입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리고 SVB가 고객들의 돈을 돌려주지 못해 금융위기에 처할 것이라는 소식이 이어졌다. 어떻게 대형은행도 아니고 평소에 듣지도 못했던 로컬의 작은 은행이 파산한다고 미국이 금융위기에 빠지겠는가 내 귀를 의심했다. 그러나 연일 보도가 그치지 않는 것을 보고 관심을 갖게 되었다.

실리콘밸리에서 기반을 잡은 SVB는 1982년에 설립하여 40년의 역사를 가진 은행이다. SVB의 주 고객은 IT 기업들이다. 코로나 사태 때 초저금리와 정부 지원으로 IT업계가 호황을 맞으면서 굉장히 빠른 속도로 성장했다. 금융지주사로 다양한 계열사도 거느리고 있는 SVB는 미국, 영국을 포함해 캐나다, 중국, 덴마크, 독일, 인도, 이스라엘, 스웨덴 등 9개국에 진출했으며, 30 곳에 지점을 두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총 자산 2천90억 달러, 전체 예금액 1천754억 달러에 달하는 미국 내 은행 가운데 자산 순위 16위에 해당하는 은행이다.

그렇다면 SVB의 파산 원인은 무엇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뱅크런’ 고객들의 예금 인출 때문이다. ‘뱅크런’이란 거래 은행에서 고객들이 한꺼번에 예금을 인출하는 현상을 말한다. 뱅크런은 금융시장이 안정적이지 못하거나 거래 은행의 재정 상태가 좋지 않을 때 나타나며 이로 인해 은행은 지급할 수 있는 자금이 부족하게 되어 패닉 상태에 빠지게 된다. 뱅크런은 모든 은행이 예금의 일부만 보관하고 나머지를 대출하거나 채권 등을 사두고 돈을 버는 현 체제 하에서는 일어날 수밖에 없는 현상이다.

1907년 뉴욕 증시가 문을 닫을 수밖에 없을 정도로 심각했던 금융위기, 1929년 주가폭락으로 벌어졌던 대공황, 부동산 거품이 꺼지면서 발생했던 2008년 대불황도 모두 뱅크런에서 시작됐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최근 IT 기업들의 성장세가 둔화된 가운데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고금리 정책까지 이어져 자금이 필요해진 기업들이 예금 인출에 나서기 시작했다. SVB는 보관하고 있던 돈으로 충분치 않다고 판단하여 인출을 원하는 고객들에게 돌려줄 현금 마련을 위해 그동안 사두었던 미 국채와 주택저당 증권 등을 팔아야 했는데 여기서 문제가 발생했다. 즉 금리가 오르면서 채권 가격이 낮아졌기 때문에 SVB는 보유하고 있던 유가증권 210억 달러를 매각하면서 18억 달러를 가만히 앉아서 손해 보게 되었고, 이를 보완하기 위해 22억 5천만 달러 유상 증자 계획을 발표하게 되었다. 그러자 시중에 SVB가 위험하다는 소문으로 확대 재생산되어 퍼져나갔고, 이 소문을 들은 고객들이 앞 다투어 돈을 인출하게 됐고-뱅크런-, SVB는 더 많은 증권을 헐값에 내다 팔아야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대부분의 나라에는 은행이 파산하면 일정 금액을 돌려주는 예금자 보호 제도가 있다. 미국은 그 보호 한도가 25만 달러이다. SVB의 주 고객들은 기업들이기 때문에 25만 달러 이상 예치된 경우가 더 많고 93%는 보호 대상에 속하지도 않는다. 그런데 고객 대부분이 신생회사이기 때문에 자금이 묶이면 줄도산과 대량 해고로 이어질 수 있다. 기업들뿐 아니라 SVB와 규모가 비슷하거나 더 작은 은행들이 신뢰를 잃을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진다. 좀 심하게 말하면 SVB 파산으로 글로벌 은행 시스템 전체가 붕괴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고조되기 시작했다.

다행히 이러한 예금자들의 불안 심리 확산을 방지하고자 예금자 보험 한도를 초과하는 예금도 원금을 보전하겠다는 정부 정책이 발표되었고, 아울러 금융 관계자들은 정부 정책과 은행들의 펀드멘털을 감안할 때 은행 시스템 전체 붕괴 가능성은 극히 제한적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그 이유는 미국의 대형 은행들은 매년 스트레스 테스트를 실행하면서 리스크 관리를 하고 있으며, 벤처 생태계 중심으로 운영했던 SVB의 운용 방식이 대형은행들과는 차별화 된 방법이었기 때문에 위기를 초래했다는 것이다. 즉 다른 은행들이 SVB와 같은 방식으로 파산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아울러 예금자들의 불안 심리 확산을 방지하고자 예금자 보험 한도를 초과하는 에금도 원금을 보전하겠다는 정부 정책이 발표 되었고, 미 연방준비이사회는 은행에 대한 유동성 지원을 위해서 BTFP도 조성하겠다고 발표했다. BTFP는 미국 국채, MBS 등 담보를 제공하는 금융기관에 1년간 자금을 대출해주는 프로그램이다.

현재 SVB는 미 캘리포니아주 금융보호혁신국이 파산 관재인으로 임명한 미 연방예금보험공사(FDIC)의 관리를 받고 있는 상태다.

후속 보도에 의하면 영화 원초적 본능(Basic Instinct)으로 스타덤에 올랐던 유명 여우 샤론 스톤이 SVB 파산으로 ‘재산의 절반을 잃어다’고 토로한 것으로 알려졌다. 짐작컨대 샤론 스톤은 예금주가 아니라 SVB 주식을 상당수 보유한 주주이거나 투자자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 와중에 정작 SVB의 전 회장 겸 CEO인 그레그 베커는 SVB 파산 열흘 전에 주식 1만2천 주를 약 360만 달러에 매각했고, 파산 사흘 뒤에 부인과 함께 하와이 별장으로 떠났다고 알려져 세간의 빈축을 사고 있다. 한 마디 덧붙이자면 그의 아내는 파산법 전문가로 스탠퍼드대 로스쿨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고 한다.

안창해. 타운뉴스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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