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니 생각이고
05/01/23  

이 길이 내 길인 줄 아는 게 아니라

그냥 길이 그냥 거기 있으니까 가는 거야

원래부터 내 길이 있는 게 아니라

가다 보면 어찌어찌 내 길이 되는 거야


내가 너로 살아 봤냐 아니잖아

니가 나로 살아 봤냐 아니잖아

걔네가 너로 살아 봤냐 아니잖아

아니면 니가 걔네로 살아 봤냐 아니잖아

아니잖아 아니잖아 어? 어?

아니잖아 어? 어?


가수 장기하의 다소 별난 곡 "그건 니 생각이고" 가사 중 일부이다. 이 곡은 말이 안 통하고 답답할 때, 서로의 입장 차이가 좁혀지지 않을 때, 내 생각을 마음대로 펼칠 수 없을 때 떠올리면 가슴 한구석이 조금 시원해지는 곡이다. 

영어로 "put yourself in someone's shoes"라는 표현이 있는데 다른 사람의 처지에서 생각한다는 "역지사지"라는 뜻을 갖고 있다. 그런데 살아보니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한다는 것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애고 어른이고 다들 자기 입장이 급급하지 대개의 경우 남의 입장까지 생각해 줄 겨를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것만 같던 수많은 것들이 내가 실제로 그 사람의 입장이 되고 나면 비로소 '아... 이런 것이로구나!'하고 깨닫게 된다. 

어릴 때는 굳이 남의 입장에서 생각을 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고 내 입장만 생각하고 살아도 별 불편이 없었다. 내 한 몸 챙기며 살기도 바빴고 부족하기 짝이 없었으니깐. 그런데 나이가 들면 들수록 나 외에 다른 사람들의 입장을 살피고 헤아려야 할 일들이 많아진다. 그리고 이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는 잘 모르겠다.

가장 먼저 떠오른 예로는 아이 엄마가 되기 전과 후가 판이하게 다르다. 아이가 없을 때는 제 아이를 제대로 돌보지 못해서 쩔쩔매는 부모들을 이해할 수 없었고 도대체 왜 저러나 한심해 보이기까지 했었다. 식당에서 난동을 부리는 아이를 제어하지 못하는 부모를 보면 부모가 영 잘못하고 있구나 생각했었다. 그렇게 아이들과 부모들을 비정상적이고 무능한 사람처럼 바라보곤 했었는데 내가 애를 낳아보니 그것도 넷을 낳아보니 애들은 원래 다 그렇다. 배고파도 울고, 불편해도 울고, 심심해도 운다. 그 누구의 잘못이 아니다. (물론 정도의 차이는 있음)

그렇다. 직접 해보기 전엔 미처 몰랐다. 식당에서 일을 하기 전에는 팁을 내는 것이 세상 아까웠었고 마트에서 캐시어로 일하기 전까지는 세월아 네월아 손이 느린 캐시어를 마음속으로 저주했었다. 병원에서 일하기 전까지는 예약하고 왔는데도 진료보기까지 한 시간 이상 기다리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고 직접 요리를 해보기 전까지는 음식 타박하는 사람이 얼마나 얄미운지 몰랐다. 하지만 뭐가 되었든 내가 실제로 경험해 본 일만큼은 그런대로 이해를 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나는 임신했을 때 산부인과 의사로 아이 셋을 둔 여의사를 선택했었다. 그냥 왠지 출산도 해보지 않은 남자 의사에게 나의 출산을 맡기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한 가지 신기한 건 나 역시도 아이로 꽤 오랜 세월 살아봤는데도 이상하게 내 아이에 대한 이해심은 한참 부족하다는 사실이다. 이건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한다"와 같은 경우인 걸까? 오늘도 별일 아닌 일로 아이를 혼내다가 '아 나는 왜 이런 걸 그냥 넘어가지 못하는가?'하고 낙담했다. 그리고 또 하나, 평생 남자로는 안 살아봐서 그런지 남편의 머릿속은 죽었다 깨어나도 모를 것 같다. 남편도 마찬가지겠지? 

서로의 입장이 다를 때 이렇게 노래하며 웃어본다. 


내가 너로 살아 봤냐 아니잖아

니가 나로 살아 봤냐 아니잖아

아니잖아 어?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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