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사고
05/15/23  

할리우드 액션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자동차 사고 장면을 보고 있으면 지나치게 사실적이어서 두 눈을 질끈 감거나 몸이 긴장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런데 이틀 전 운전 경력 이십여 년 만에 영화에서 봤던 그런 최악의 차 사고를 당했다.

오후 1시경 볼일을 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집을 1km 남짓 남겨두고 내 차는 빨간불 신호대기 정지 상태였다. 그런데 갑자기 뒤에서 폭탄이 터지는 듯한 엄청난 굉음과 함께 차 안에 모든 물체들이 일제히 뒤로 날아갔다. 뒤에서 속도를 줄이지 않고 달려오던 차량이 그대로 내 차로 충돌한 것이었다. 꿈인가 생시인가? 이러다가 죽는 건가? 하다가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고 비상등을 켜고 차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차가 틀어져서 그런지 운전석 문도 잘 열리지 않았다. 내 차를 들이박은 차량의 운전자도 차 밖으로 나왔다.

내 차 상태를 보니 가관이었다. 뒤 창문과 왼쪽 창문이 다 깨지고 범퍼와 라이트, 왼쪽 문은 덜렁 거리고 있었으며 후면부는 가차 없이 찌그러진 채 2미터 정도 밀려가 횡단보도 안으로 들어가 있었다. 차를 보는 순간 너무 화가 나서 "뭐 하시는 거예요?"라고 소리쳤다. 너무 피곤해서 그만 졸음운전을 했다고 고백하시며 얼른 도로에서 차부터 빼라고 하셨다. 누군 도로를 막고 이러고 있고 싶겠냐고요... 시동이 걸려있는 상태였지만 엑셀이 밟히지 않는다. 그때 내 휴대폰이 자동으로 119 응급 신고를 시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사용 중인 아이폰 14 휴대폰이 사고가 발생하면 자동으로 응급 전화를 거는 기능이 있다고 해서 설마 이런 걸 쓸 일이 있을까 했는데......

순식간에 소방차, 경찰차가 출동하고 대로변이라 지나가는 사람들과 차들의 구경거리가 되고 있던 중 떨리는 가슴 부여잡고 보험사, 남편 그리고 코로나 격리 중으로 등교하지 못하고 집에 있던 딸에게 사고 소식을 알렸다. 긴 이야기 짧게 하자면 우리 식구들의 발이 되어준, 우리 아이들의 평생 추억이 담긴 패밀리카는 폐차 판정을 받았고 나는 자고 일어나니 목이 안 돌아간다.

그래서 병원부터 찾았더니 교통사고 환자 숱하게 봤을 법한 의사가 내 얼굴은 보지도 않고 엑스레이만 훑어보더니 나를 사기꾼 나이롱환자 취급하기 시작했다. 교통사고 나면 무조건 뒷목부터 잡고 입원부터 하는 나이롱환자들이 많아서 병원과 보험사에서 점점 약관을 강화하고 환자들을 고운 눈으로 보지 않는다는 것은 안다. 하지만 나이롱환자 노릇도 할 일 없고 시간이 여유로운 사람이나 할 수 있는 거 아닌가? 이때다 싶어서 한몫 챙기려고 기를 쓰는 일부 사람들 때문에 무조건 동급 취급받는 것은 불쾌하기 짝이 없다. 내 보험회사 측도 내게 도움을 주려는 느낌보다는 약관이 어떻고 원래 이건 그렇고 법이 어떻고... 자기네 입장 설명하기 바빴다. 가만히 있다가 마른하늘의 날벼락처럼 사고 당한 것도 황당하고 온몸이 쑤시고 아픈 것도 서럽고 처리할 일은 태산이고 사고로 인해 내가 손해 본 것들만 줄줄이 생겨나니 참으로 힘들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괴로운 것은 멀쩡했던 우리 차가 폐차되고 만다는 사실이다. 셋째를 임신하고 더 이상 5인승 승용차에 가족을 다 태울 수 없게 되어 처음으로 우리 힘으로 장만했던 우리 가족의 첫 패밀리카였다. 미국에서 한국으로 들여올 때 운반비나 세금 등이 만만치 않았지만 앞으로 10년은 더 탈 수 있다는 생각으로 가져왔는데 5년 만에 작별을 하게 되었다. 셋째가 지금 초등학교 5학년이니 꽤 세월이 흘렀지만 지금까지 고장 한번 안 나고 우리 가족의 모든 역사에 함께 했었다. 이차로 아이들을 데려다주고 데리러 가고 차 안에서 허구한 날 대기했고, 수많은 곳을 함께 여행했고, 나의 발이 되어 많은 곳에 안전하게 데려다주었으며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을 태우고 달리기도 했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작별이라니 너무 속상하다.

답답한 마음에 SNS에 사고 소식을 올렸더니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경험을 했다며 공감과 위로의 댓글을 남겨주었다. 그래, 그래도 차에 아이들 없이 나 혼자 타고 있었으니 다행, 차가 폐차 수준으로 망가졌는데 내 손톱 하나 깨진데 없으니 감사, 횡단보도에 길 건너던 보행자가 없었음에도 감사하자. 속상하고 억울하고 화나는 마음 때문에 며칠 마음이 힘들었는데 이제 마음을 잘 정리하고 내 몸과 마음을 회복하고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매진해야겠다.

그리고 여러분, 졸음운전이 이렇게 무섭습니다. 졸리고 피곤할 때 절대로 운전하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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