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스카우트 원로회의
05/22/23  

한국 스카우트 원로회의 '2023 춘계 연찬회'에 참석했다. 원로회의는 그 명칭처럼 원로들의 모임이다. 원로회의는 스카우트 활동만 열심히 했다고 가입할 수 있는 것도, 그렇다고 일정한 연령 이상이면 누구나 참여가 가능한 것도 아니다. 한국보이스카우트에서 평생 활동했던 분 가운데 일정한 자격 기준에 해당하는 분들만이 가입할 수 있다. 

그 원로회의에서 자격이 안 되는 나를 초청한 이유는 확실히 모르겠으나 짐작건대 과거 보이스카우트 중앙본부와 서울 연맹에서 함께 활동했던 몇몇 원로회의 집행부 간부들이 추천한 것으로 사료된다. 

특히 이번 모임은 올 8월 전라북도 새만금에서 개최되는 '제 25회 세계잼버리'를 앞두고 열리는 모임이기에 그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겠다. 참고로 세계잼버리는 4년에 한 번씩 열리며 1991년 제 17차 대회를 대한민국 고성에서 개최하여 성공적으로 마친 바 있다. 1991년 17차 세계잼버리에서 활동했던 주역들이 바로 오늘날의 원로들인 것이다.

전국에서 모인 36명의 원로들과 1박2일 함께 먹고 자고 이동하며 경기도 연천에 있는 태풍전망대와 철원의 노동당 당사를 방문했다. 이어서 백마고지와 고석정을 찾았고, 고석정 근처에서 첫날의 여정을 풀었다. 

다음날 화천 평화의 댐을 둘러보고, 춘천댐을 거쳐 서울로 이동하는 바쁜 일정이었다. 지방에서 참가한 분들은 대부분 모르는 분들이었으나 서울에서 활동했던 분들은 거의 다 아는 분들이라 매우 반갑게 맞아주었고 나도 반가웠다. 과거의 야영장이나 훈련소에서 있었던 일들을 얘기하며 웃음꽃을 피웠다. 특히 지리산에서 있었던 서울연맹 잼버리를 위해 함께 답사했고, 행사를 진행했던 두 분이 반겨 주었다. 덕분에 1박2일 유쾌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여정은 용산역 대합실에서부터 시작됐다. 지방에서 올라오는 분들과 서울에서 참여하는 분들 모두를 고려해 그곳을 집합 장소로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대합실에는 스카우트 제복을 입은 분들이 한군데 모여 있었다. 하얗게 센 머리, 걸음걸이, 모두 스카우트 제복과 어울려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삶의 굴곡이 깊게 새겨져 있는 얼굴을 하고 있는 그들도 처음 제복을 입고 누구보다 열심히 스카우트 활동을 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쇼윈도우에 비친 - 바퀴 달린 이동용 가방을 끌며 터덜터덜 걷고 있는 내 모습 역시 낯설어 보이기는 마찬가지였다.

스카우트 원로회의 '2023 춘계 연찬회'가 열리는 1박2일 동안 원로들의 걸음걸이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다리를 질질 끌면서 걷는 분, 팔을 춤추듯이 휘저으며 걷는 분, 발을 성큼성큼 앞으로 내딛지 못하고 종종걸음으로 걷는 분 등 과거에 야영장에서 씩씩하게 걸으며 호령하던 젊은 날의 대장들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심지어 허리를 뒤로 젖히고 어깨는 구부정하게 하고, 목을 앞으로 쭉 빼고 걷는 분도 상당수 있었고, 또 활처럼 휜 상태로 꾸부정하게 틀어진 상태로 걷는 분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어떤 모습으로 걷든지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들의 걸음걸이처럼 각자 다른 모습으로 지금까지 자신을 간수하며 살아냈다는 것이다. 삶은 사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는 것이라고 하지 않던가. 그렇게 살아낸 인생이야말로 꽃보다 아름다운 인생이 아니겠는가.

잠자리는 지리산 잼버리에서 함께 활동했던 두 분과 원로회의 직전 회장을 지낸 어르신, 그리고 나 이렇게 넷이 함께했다. 나를 제외하고는 모두 80이 넘었지만 건강한 모습이었다. 88세 최고령인 분이 침대에서 주무시고 80대 초반의 두 분과 나는 방바닥에서 잤다. 바닥은 차디찬 인조 대리석 타일이었으나 메트리스를 깔고 자서 큰 불편함은 없었다. 일찌감치 잠들었다가 새벽 2시에 모두 일어나 날 밝을 때까지 오순도순 이야기꽃을 피웠다. 

우리는 정각 6시에 밖으로 나와 한탄강이 내려다보이는 길을 함께 걸었다. 그들은 80대 소년들이었다. 스카우트 제복은 그 제복을 처음 입었던 까까머리 소년으로, 또 지도자가 되어 대원들과 함께 활동하던 젊은 시절로 되돌려놓았다. 그들은 현재가 된 과거 속에서 웃고 이야기하며 발걸음 가볍게 강변을 걸었다. 

그날, 35년 전 힘차게 떠오르는 태양을 보며 지리산 한신계곡을 함께 걷던 그 젊은이들이 거기 있었다. 새만금 제 25회 세계 잼버리 구호 ‘Draw your Dream!’을 외치는 젊은이들이 거기 있었다. 

안창해. 타운뉴스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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