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자신을 알라
05/30/23  

요즈음 전 세계 어디나 진영논리가 지배하고 있다. 고국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고국에서 만난 대부분의 사람들은 상대방의 말은 들으려 하지 않고 자기들의 주장만이 옳다고 믿고 행동하고 있었다. 사적인 모임에서 정치적인 문제를 거론할 경우는 더 심각했다. 남녀노소 구별하지 않고 양극단으로 나뉘어 서로 극심한 증오심과 적개심을 감추지 않고 대결하는 양상이다. 중도는 없다. 중도를 표명하는 순간, 배신이 되고 적이 되는 시대이다.

어릴 적 친구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내게 넌 어느 쪽이냐고 노골적으로 묻는 친구도 있었다. 심지어 중고동창회 단톡방에서 한 친구가 어느 한 쪽에 치우친 글을 옮겨 놓았다가 난리가 났다. 급기야 몇몇 뜻있는 친구들이 호소를 해서야 불을 끌 수 있었다.

작금의 우리가 사는 미국이나 우리 고국 대한민국의 사회적 혼란과 정치적 대립 상황을 보면서 2,500년 전 그리스에서 벌어졌던 정치적으로 혼란한 싸움에서 초지일관 정의에 대한 신념과 믿음을 갖고 투쟁하다가 희생양이 되어 독배를 받고 세상을 떠났던 소크라테스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소크라테스(BC 470~BC 390)가 살았던 시대, 아테네도 오늘날의 한국이나 미국처럼 혼란스러운 시대였다. 아테네 민주주의가 심각하게 부패했던 시기였으며, 개인 윤리의 타락이 극심했다. 정치적 상황도 보수주의자들과 진보주의자들이 서로 맞서 싸우면서 아테네는 서서히 몰락의 길로 접어들게 되었다.

소크라테스는 그 시대의 관습대로 어린 시절 가업을 이어받기 위해 아버지로부터 조각과 석공 기술을 배웠으나, 학문에도 관심이 많았던 그는 철학과 기하학, 천문학 등 여러 분야에 걸쳐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는 청년이 되어 40세까지 세 차례나 전쟁터에 나가 직접 전투에 참여한 바 있다. 마지막 전장에서 돌아온 이후 그는 젊은이들과 대화를 하며 그들에게 바르게 살 것을 가르쳤다.

소크라테스는 당시 사람들이 학문의 관심을 자연 탐구에 두었던 것을 인간생활로 돌렸다. 인간의 성격과 행위를 분석하는 등 인간 본질 탐구에 집중했다. 그로부터 350여 년 후, 로마의 사상가 키케로는 ‘소크라테스가 철학을 하늘에서 땅으로 끌어 내렸다“고 말했다.

소크라테스는 공직(公職)이 '자기의 원칙'을 무너뜨리고 사회적 타협을 하는 것이라 여겼고, 정치적으로 어느 편에도 가담하지 않았다. 그러나 50대 중반에 이르러서 500명으로 구성된 원로회의 의원으로 1년간 정치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당시 그는 어떤 재판에서 온갖 협박에도 불구하고 참주들의 위헌적 유죄판결을 혼자서 끝까지 거부하는 용기를 보여준 바 있다.

만년(晩年)에 소크라테스는 불경죄로 기소되었다. 소송을 제기한 세력은 반혁명을 통해 복위한 민주주의 세력이었다. 기소 이유는 ‘젊은이들을 타락시키고’, ‘아테네가 숭배하는 신들을 무시하고 새로운 종교를 끌어들였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실제 이유는 당시 30인 참주(僭主)의 공포정치에 대한 반동으로 보수적인 민주정(民主政)을 시행하고 있던 아테네에서 소크라테스가 반민주주의적인 알키비아데스와 30인 참주의 우두머리였던 크리티아스에게 크게 영향을 주었다는 혐의였다. 그는 배심원 투표에서 약 280 대 220의 비율로 유죄판결을 받았고, 사형을 언도 받아 기원전 399년에 71세의 나이로 독배를 마시고 죽었다.

플라톤의 저서 《변론》에는 소크라테스가 법정에서 한 말이 기록되어 있다. ‘법정이 나의 주장(철학)을 포기한다면 석방해주겠다는 제안을 하더라도 내가 철학 하는 이유가 하늘의 명령이기 때문에 그러한 결정을 받아들일 수 없다’

그는 악법도 법이라고 하면서 자기를 죽이려고 작정하고 달려드는 무리들이 적용한 법을 지키고 따르기 위해 독배를 받은 것이 아니다. 그는 자기 주장, 자기 철학에 근거한 행동을 증거하기 위해 자신이 따랐던 영혼의 소리(하늘의 명령)에 따랐던 것이다.

오늘날, 과연 양심에 따라 영혼의 소리에 귀 기울여 행동하는 정치인들이 몇이나 될까? 자신과 자기가 속한 무리들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는 정치인들, 허울 좋은 말을 내뱉으며 국민들을 현혹하고 상대에 대한 사실들을 날조하여 비방하고 헐뜯는 정치인들. 이들에겐 그 누구라도 자기주장을 마음 놓고 하면서 서로의 얘기에 귀 기울이고 웃으며 대화하는 세상, 나의 생각이 부족한 것일 수 있다는 겸손에 근거한 대화는 기대할 수 없다. 그런 만큼 사회적 화합과 갈등 해소도 소원할 수밖에 없다.

소크라테스는 많이 안다면서 스스로를 현자라고 외치고 다녔던 소피스트들을 향해 자신이 무지하다는 사실을 깨달아야한다며 ‘너 자신을 알라’고 외쳤다. 자신이 모른다는 것(무지)을 모르기 때문에 그 상태에 만족하게 되고 더 이상의 발전이 없으며, 스스로 모른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늘 그 자리에 머물러 있게 된다.

‘너 자신을 알라’ 이 말은 시대를 뛰어넘어 지금 이 시대를 사는 우리들 모두에게 필요한 경구이다.

안창해. 타운뉴스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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