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당에서
05/30/23  

나의 종교는 천주교이다. 성당에 다니기 전부터 간혹 서류에 종교를 기재해야 할 때 나는 한치에 망설임도 없이 늘 "천주교"라고 써넣었다. 나의 부모님은 성당에서 세례를 받았지만 결혼 이후 성당에 나가지는 않으셨기 때문에 내가 나의 종교를 천주교라고 인지한 것은 순전히 조부모님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아주 어릴 적에 조부모님을 따라 성당에 몇 번 갔었는데 그 기억만으로 나는 내가 천주교인이라고 굳게 믿게 되었다. 

그러다가 국민학교 5학년때 내가 좋아했던 짝꿍이 성당에 다닌다는 말에 그 친구를 따라 성당에 가게 되었다. 토요일 어린이 미사였는데 성당에 우리 학교 친구들이 워낙 많아서인지 전혀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친구를 따라 세례 성사도 받고 견진 성사도 받으며 미국으로 떠나기 전까지 성당을 아주 열심히 다녔었다. 아무도 등 떠미는 사람이 없었지만 정말 매주 성당에 가는 것이 그렇게 재미있고 즐거울 수 없었다. 고작 2-3년이었지만 그때 그 시간은 지금도 내 인생에서 매우 중요한 페이지,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때 내가 나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의 사랑이며 성모님께서 드러내신 믿음의 순종 같은 것을 눈곱만큼이나 이해하고 있었을까? 아니, 나는 기도문을 달달 외우고 교리 시험을 치르고 찬양노래를 부르면서도 사실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성당은 가고 싶은 곳이었다. 성당에 가면 괜히 근사해 보이는 대학생 선생님들과 좋아하는 친구들과 뭔가 어른스러운 선배들이 있었다. 그들과 어울리는 것이 재미있었고 여름이면 여름 수련회, 연말에는 성탄절 발표회와 같은 커다란 이벤트도 그 시절 나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흥분되는 일이었다. 그 좋은 기억들은 나를 계속해서 성당으로 인도해 주었다. 

지금 우리 아이들이 다니는 성당은 내가 어릴 적에 다니던 바로 그 성당이다. 내가 다니던 성당에 우리 아이들이 다니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재미있기도 하고 참 감사하기도 하다. 비록 새 성전을 건립해서 내가 다니던 성당과는 다른 건물이고 이제 그 옛날 친구들은 아무도 남아있지 않지만 여전히 내게는 "우리 성당"이라고 부를 수 있는 그런 곳이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도 성당이 재미있고 가고 싶은 곳이 되었으면 좋겠다. 미사시간에 딴생각을 해도 좋으니, 기도문을 완벽하게 외우지 못해도 좋으니 잿밥에만 더 맘이 가더라도 괜찮다. 그래도 주일만큼은 학원, 시험, 모임 등 다른 일정이 생겨도 성당을 최우선으로 생각해 주면 좋겠다. 어릴 때 성당에서 만난 좋은 사람들과 성당에서 만든 즐거운 추억들이 살아가는 내내 우리 아이들을 성당으로 인도해 줄 것이라고 믿는다. 내가 그랬듯이 말이다. 

초등학교 3학년인 막내가 성당 첫 영성체반에 있어서 주 1회 새벽 미사 참례를 하고 있다. 솔직히 말하자면 첫 영성체를 받기 위해서 꼭 해야만 하는 과정이라서 어쩔 수 없이 나가고 있는 것이다. 아침 일찍 아이를 깨워서 성당에 가는 것은 나에게도 아이에게도 쉬운 일은 아니지만 아이에게 매우 특별한 경험이 될 것임은 확실하다. 

오늘 새벽 미사를 보는데 내 앞으로 할머니들이 나란히 앉아계셨다. 공교롭게도 할머니들이 다 분홍 상의를 입고 계셨는데 마치 꽃밭 같아서 빙그레 미소가 지어졌다. 아주 환한 분홍, 딸기우유처럼 부드러운 분홍, 체크무늬 분홍, 철쭉빛처럼 아주 진한 분홍 등 분홍도 참 가지가지였다. 고운 분홍빛이 그 옛날 성당 가는 날만 손꼽아 기다리던 내 마음 같았다. 졸리지만 첫 영성체 받을 거라고 새벽잠을 포기하고 성당에 와있는 우리 막내 마음 같았다. 새벽부터 곱게 차려입으시고 성전 앞줄에 나란히 앉아있는 할머니들 마음 같았다. 

성당에서 조용히 기도했다. 오늘도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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