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투어
06/05/23  

친구와 돈암동 성신여대 입구역 1번 출구에서 만났다. 10시에 만나기로 했는데 9시 30분에 도착하니 친구가 기다리고 있었다. 우린 걸었다. 성신여대 가는 길로 들어섰다. 식당, 술집, 각종 상점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길을 지나 돈암동 천주교회 앞을 지나 성북경찰서를 오른편으로 바라보며 물길을 따라 걸었다. 성당과 경찰서 근처에 살던 친구를 생각하며 한동안 걸었다. 그 친구는 지금 LA에 살고 있으며 가끔 만나고 있다.

걷다가 잠시 쉬기도 하면서 오리들이 헤엄치고 백로가 외로이 서있는 물길을 따라 걸었다. 보문동, 고3 담임 선생님 댁 근처라고 짐작되는 곳을 지나는 듯했으나 그 집을 찾을 수는 없었다. 선생님댁은 한옥이었는데 어디에도 한옥은 보이지 않았다. 선생님댁을 찾았던 그날의 기억은 뚜렷하다. 언제나 내편이 되어주셨던 분이다. 오늘의 내가 있도록 큰 힘을 주신 분이다. 대전 현충원에계신 선생님을 떠올리며 걸었다.

잠시 내려가니 대광중고등학교 건물이 보였다. 매일 동네 공원에서 만나 체조하는 박 목사님이 대광 출신이라는 사실이 생각나 목사님께 사진을 하나 찍어서 메시지로 보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고맙다는 답장이 왔다. 매일 아침 좋은 말씀과 사진을 보내주시는 분이다.

청계천에 접어들었다. 커다란 잉어들이 헤엄치고 있었다. 한두 마리가 아니다. 십여 마리가 수심이 깊지도 않은 물에서 유유자적하고 있었다.

청계천에서 나와 동묘를 잠시 둘러보았다. 위기에 빠진 조선을 돕기 위해 4만3천여 명의 군사를 이끌고 왔던 명나라 군대는 전쟁이 끝났으나 철수하지 않고 계속 주둔해 있었다. 그들은 철군 명목으로 사당을 짓도록 했으며 그때 이 동묘가 세워졌다.
동묘 밖은 각종 중고물품을 팔고 사는 사람들로 붐볐으나 동묘 안은 찾는 사람이 별로 없어 한가로웠다.

동묘에서 나와 동대문을 향해 걸었다. 친구가 복어요리를 좋아하는 나를 위해 동대문 근처의 복어집에서 점심을 먹자고 했다.

식당에서 나와 흥인지문 공원을 한 바퀴 돌아보고 청계천으로 다시 가서 광화문을 향해 걸었다. 친구는 출발 전부터 광화문까지 걷자고 했다. 전태일 열사의 상반신 조각상이 있는 곳에서 친구는 사진을 찍어 달라며 포즈를 취했다. 단 한 번도 자기를 찍어 달라고 부탁한 적이 없었던 친구라 깜짝 놀랐다.

청계 5가쯤 되는 곳에 도착해서 내가 어려서 놀던 이화동, 서울미대, 서울 의대 방향으로 가고 싶었다. 지금은 대학로가 되어 버린 서울 문리대 자리, 초등학교 시절 내가 놀던 곳이다. 미대와 의대 사이에 있던 창경국민학교가 나의 모교다. 친구 아버지가 문리대에서 교내 식당을 운영해 가끔 가서 짜장면을 먹곤 했다.

우리 학교 자리에는 큰 건물이 들어서 있었다. 근처에 잠시 머물다 골목을 나와 원남동 방면으로 향했다. 원남동 로터리에서 오른쪽에 창경궁 담장을 끼고 창덕궁 방면으로 걸었다. 창덕궁은 우리 어려서는 비원이라고 불렀다. 초등학교시절 학교 대표로 가을에 이곳에서 열렸던 글짓기 대회에 참가한 적이 있었다. 집으로 돌아갈 때 주머니에는 밤이 가득 했었다.

창덕궁까지 와서 창덕궁 맞은편 첫 골목에 있는 장은선 갤러리에 들리지 않을 수 없었다.
장은선 갤러리는 라디오코리아가 지금의 자리로 이전하기 전까지 과거 라디오코리아 도산홀에서 일 년에 한두 번 이상 한국 화가들의 작품 전시회 개최를 주선했던 장은선 대표가 운영하고 있다. 장은선 대표는 내 부탁으로 지금도 현역으로 활동하는 내 친구를 미국에서 전시회할 수 있도록 도와준 분이다. 그 전시회를 통해 친구는 도약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었다.

사무실에서 일하던 장 대표가 전시장으로 나오며 우리를 봤다. 처음에는 그냥 방문객이겠거니 하고 여기는 눈치였는데 나와 얼굴이 마주치는 순간 환하게 웃으며 달려와 손을 내밀었다. 3년 만이다. 두 해를 한국에 왔다가 연락도 못 하고 갔었다. 인사를 마친 장 대표는 방문 중인 서울대 김 모 교수와 다른 갤러리로 가야 하는데 다른 약속이 없으면 나도 같이 가자고 했다. 저녁식사를 함께하자면서. 친구에게 다른 계획이 없는가 물으니 함께해도 좋다고 했다.

우리는 안국동로타리, 경복궁을 지나 한 아트센터에 도착했다. 그곳에 전시되어 있는 작품을 감상하고 출품 작가와 기념 촬영을 한 후에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근처 장어요리 식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4인분을 시켰는데 두 분이 거의 드시지 않아 친구와 내가 아주 배부르게 먹었다.

식사를 마치고 장 대표는 우리 셋을 창덕궁 앞에 내려 주었다. 김 교수는 택시를 타고 갔고, 친구와 나는 집으로 가기 위해 전철역을 향해 걸었다.

기억 속의 풍경과 다른 서울의 모습. 그럼에도 여전히 반가운 사람들.
아침 9시 30분, 과거 기억을 더듬으며 시작한 서울 투어는 또 다른 추억을 만들고 12시간 만에 막을 내렸다.

안창해. 타운뉴스 발행인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