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당한 대피 경계경보
06/05/23  

5월의 마지막날 이른 아침, 온 식구들의 휴대폰에서 귀를 찌르는 날카로운 알람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화들짝 놀라 휴대폰을 확인하니 대피하라는 경보 문자였다. 잠에서 깬 지 얼마 안 돼 헛것을 봤나 싶어서 다시 처음부터 천천히 읽어보았다. 서울시에서 발송한 '6시 32분 서울지역에 경계경보 발령. 국민 여러분께서는 대피할 준비를 하시고, 어린이와 노약자가 우선 대피할 수 있도록 해 주시기 바란다'는 내용의 위급재난문자였다. 분명히 대피를 준비하라는 문자가 틀림없었다. 

당혹스러웠다. 아니 무슨 영문인지 아무런 설명도 없고 어디로 어떻게 대피하라는 내용도 없이 대피 준비를 하라니…... 장난인가? 스팸인가? 몰래카메라 같은 건가? 일단 난생처음 받아본 대피 문자에 놀라 검색을 시작했다. 속보가 올라오기 시작했고 대충 어디서 시작된 것인지는 알게 되었다. 북한이 또...... 대한민국이 70년째 휴전국이라는 사실을 종종 잊고 산다. 내가 국민학교에 다닐 때는 철저한 반공 교육과 함께 실제 상황을 방불케 하는 대비 훈련도 자주 했었는데...... 어쨌든 새벽에 울린 경보 문자에 나같이 어리둥절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던지 대피소 검색 사이트는 다운되고 출근과 등교 여부를 묻는 문의도 빗발 쳤던 모양이다. 

그러더니 22분쯤 지나 행정안전부는 오전 7시 3분 '서울시에 발령한 경계경보는 오발령 사항임을 알려드린다'라고 정정 문자를 발송했다. 다행히 실제로 위험한 상황은 일어나지 않았고 해프닝처럼 끝이 났지만 뭔가 께름칙한 기분이 가시지 않는다. 당연히 시민의 안전을 위해 보낸 문자였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경계와 경보는 한시가 급한 것이기 때문에 신속히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그것이 제대로 영향력을 발휘하려면 발송하는 기관이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고 잘 준비되어 있어야 할 것이다. 우리가 받은 그 문자에는 어떤 이유로, 어디로 어떻게 대피해야 하는지 아무런 내용이 없었다. 간략하게라도 경보의 이유라도 명시되어 있었다면 그렇게까지 혼란스럽지는 않았을 것이다. 

실제로 같은 시각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현 주민들에게 "북한에서 미사일이 발사된 것으로 보인다. 건물 안 또는 지하로 대피하라"는 내용의 경보를 보냈다. 경보 상황과 주민 대피처 등의 내용이 담긴 경보 문자는 확실히 우리가 받았던 경보 문자와는 대조적이다. 

육하원칙을 배운 초등학생 이상이면 당연히 다 알 것 같은데 허술하기 짝이 없는 경보 문구에 기가 차지만 어찌 되었든 우리 정부도 앞으로 경보 발령시스템을 전면 재정비하기로 했다고 한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시민 혼선을 막고 신속하고 정확한 안내를 위해 경보 체계, 안내 문구와 대피 방법 등을 더 다듬어 정부와 협조해 발전시켜 나가겠다"며 이번 일을 계기로 경보 체계와 안내 문구 등을 개선시키겠다고 밝혔다. 아예 경보 문자가 오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는다면 더 좋겠지만 앞으로는 황당한 경보로 더 큰 혼란을 야기시키는 일만큼은 없었으면 좋겠다. 

온 국민을 대상으로 한 몰래카메라 같은 상황 때문에 수많은 질책이 있었지만 예고되지 않은 간이 민방위 훈련 정도의 효과는 있었다고 생각된다. 그나저나 실제 상황이었다면 뭘 어떻게 해야 했을까? 귀중품 챙겨서 식구들과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가면 되는 건가? 이런 경우를 대비해서 비상용품도 구비해 두고 대피 방법도 미리 숙지해둬야 하는 건가? 아니면 모든 것을 하늘에 맡기고 조용히 운명을 받아들여야 하나? 휴전 국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언제든지 또 이런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것을 실감하며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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