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의 변화
06/12/23  

몇 해 전 평생을 고등학교 교사로 재직했던 친구가 은퇴 후에 암 투병생활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중·고등학교 6년을 함께 다니면서 같은 반을 한 적도 있었던 친구다. 말수가 적고 얌전하며 공부 잘하는 친구였다. 암세포가 침투한 장기의 일부를 절제하는 수술을 하고 재활 치료를 받고 있을 때, 마침 고국에 와있던 내게 점심을 대접하겠다며 초대했었다. 
 
친구는 기운이 없어 보였지만 밝은 웃음을 잃지 않고 있었다.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묻자 친구는 새 차를 구입할 예정이라고 했다. 젊어서부터 오픈카를 타고 싶었다면서 신성일이 즐겨 탔다는 머스탱을 살 것이라고 했다.
 
올해 초 친구는 붓글씨를 써서 보내주겠다며 내게 좋아하는 문구나 경구가 있으면 알려달라고 했다. 나는 '안빈낙도(安貧樂道)'로 해달라고 했다. 친구는 글씨를 써서 표구까지 했는데 깨질까 걱정되어 미국으로 보내지 못한다면서 서울 딸네 집에 사람을 시켜 갖다 놓았다.

친구의 이름 석 자를 인터넷에 쳐보니 친구는 각종 붓글씨 대회에서 심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었고, 원로 서예가로 대접을 받고 있었다. 교사 생활을 하면서도 취미 삼아 서예를 즐겼는데, 이제는 이 분야에서 높은 경지에 오른 것이다.
 
이번 고국 방문 길에 멋진 글씨를 써준 친구에게 보답하기 위해 만나자고 했다. 친구는 머스탱을 타고 나타났다. 우리는 오픈카를 타고 식사 장소로 이동했다. 점심 식사를 하고 차를 마시며 밀린 얘기를 나눴다. 친구는 평소에 즐기던 서예(서도)에 더욱 매진하고 있었고, 댄스(무도)에도 입문하여 각종 서양춤을 비롯해 한국의 전통 춤까지 배우고 있었다. 피아노와 기타도 익히고 있었고, 피리도 배우고 있었다.
 
친구와 대화를 통해서 암 수술 후에는 치료로 중요하지만 운동, 식사, 스트레스 관리 등 생활 면에서도 여러 가지가 개선되어야 더 큰 치유 효과를 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는 자신이 어떤 방법으로 극복했는지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지만 그의 말과 행동으로 추정하자면 다음과 같다.
 
본래 암 환자들은 심리적 충격 때문에 운동할 생각조차 못하는 경우가 많지만, 암 치유를 위해서는 그 어떤 것보다도 절대적으로 운동을 해야 한다. 이때 운동을 ‘신체 활동’의 의미로 생각하면 이해가 빨라진다. '운동이 환자나 재활 중에 있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운동을 통해 암 예방은 물론 암 치료 효과를 높이고, 직접적으로 재발률과 사망률 감소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학자들의 연구 결과가 이를 증명해주고 있다. 운동은 체내 염증을 줄이고, 면역 체계를 활성화시켜 종양 세포와 싸울 수 있는 힘을 길러주기 때문이다.
 
친구에게 춤은 바로 운동이었다. 춤이라고 하면 좋지 않은 시각으로 바라보는 사람도 있지만 춤보다 더 좋은 운동은 없다. 팔, 다리, 어깨, 허리 등 온몸을 쓰고, 거기다 이성의 손을 잡고 추는 댄스라면 유쾌한 설렘까지 동반하기도 한다. 이런 까닭인지 친구는 댄스 클럽에 가입해 각종 춤을 배우고 익혀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춤을 추면서 활기가 생기고 삶의 질이 더 높아졌다고 했다. 
 
암 치유를 위해서는 적극적인 생활 태도도 필요하다. 친구는 과거 그리 적극적이지 않았는데 지금은 매사에 적극적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스스로도 오픈카를 타고, 댄스를 배우고, 피아노, 기타, 피리 등의 악기를 적극적으로 배워 익히며 즐기고 있는 자신에 대해 놀라고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암이라는 소리를 듣는 순간 스트레스와 두려움에 휩싸이게 된다. 이로 인한 무력감은 스트레스 반응을 촉진시켜 면역력을 떨어트린다. 친구는 이를 극복하고, 자신의 건강과 삶을 주도하기 위해서 적극적인 사람이 되지 않았는가 싶다. 매사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움직이면 삶의 활기가 살아나고 삶의 의지가 불타오르게 마련이다.
 
끝으로 스트레스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긍정적인 감정이든, 부정적인 감정이든 제대로 표현되지 못하고 억눌려 있는 감정들은 건강에 악영향을 미친다. 특히 암 환자들은 스트레스와 두려움을 억누르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 스트레스는 암 세포를 감지하고 제거하는 면역체계를 약화시킨다. 학자들은 이를 해소하기 위해 명상 등의 방법을 이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친구의 서예(서도)가 바로 이 부분에 해당된다고 생각한다. 조용히 먹을 갈고 먹물에 붓을 담가 촉촉히 적신 뒤에 하얀 종이에 글을 쓰는 것 자체가 예(藝)를 넘어서 도(道)에 해당하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서예와 서도는 한 가지를 이르는 다른 이름인 것이다.
 
암 수술 후  적극적인 생활방식으로 전환하여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무도(舞蹈)와 서도(書道) 등을 통해 암을 극복하고 삶의 질을 향상시켜 나가고 있는 친구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안창해. 타운뉴스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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